한국일보

웨체스터 이야기 - ‘허드슨 리버 스쿨과 이발소 그림’

2022-05-04 (수) 노려/전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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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체스터 곳곳에는 그 옛날 부호나 화가들이 살던 집을 뮤지엄으로 만든 곳이 참 많다. 그 중 한 곳에서 ‘우와!’ 한 적이 있다. 올라나(Olana State Historic Site)이다.

실제로 이발소 안에 들어가서 본 적은 없지만, 오래전 한국에서부터 어떤 종류의 그림을 보면 ‘이발소 그림’이라고 불렀었는데, 바로 그런 식의 풍경화들이 고풍창연한 ‘올라나’저택 거실에 가득히 걸려있었다.

“우와! 굉장하네.”했다. 마치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봤을 때처럼, 사진으로만 보던 ‘허드슨 리버 스쿨(Hudson River School)’그림을 본 것이다. 미국 미술사를 좀 알면 ‘허드슨 리버 스쿨’ 장르에 대해서 웬만한 지식은 갖게 된다. 19세기 초 한 때 순전히 미국 풍경을 그렸던 미술사조이다. 즉 이발소 그림은 ‘허드슨 리버 스쿨’풍의 그림인 것이다.


올라나 저택의 주인인 프레드릭 처치(1826-1900) 씨는 ‘허드슨 리버 스쿨’ 파의 창시자인 토마스 콜의 애제자였으며, 허드슨 강변 도시인 ‘허드슨(Hudson)’시 인근 산 등성이 위에 아름다운 저택을 짓고, 뉴욕 예술계 인사들을 초대하면서 ‘허드슨 리버 스쿨’을 꽃 피운 중심 화가이다.

‘올라나’ 벽에 걸린 그림들이 좋아졌다. 사진으로 보다 실물을 볼 때 느낌이 다른 점도 있지만, 그림의 배경인 허드슨 밸리에 내가 살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그림 책도 샀다.
주로 허드슨 강을 따라 뉴욕 북쪽의 풍경을 그린 이들은 유럽 미술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들의 독특한 창조성을 표현하려고 애를 쓴 화가들이다. 물론 처음에 인정을 못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누구나 다 좋아하는 유럽풍을 쫒는 쉬운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미국식 예술 장르를 창조해 낸 것이다.

프레드릭 처치가 자기 집 스튜디오에서 바라다 보이는 저 멀리 캣츠킬 산을 그린 그림이 정말로 익숙히 보아오던 이발소 그림인 것에, ‘죄송합니다’ 한마디를 하고 싶어졌다. 그 동안 왠지 그런 그림을 깔보듯 했기에.

사람은 왜 그림을 그리는가. 왜 어떤 사람은 다른 일은 안하고 돈도 안되는 그림 그리기에 혼신을 다하는가. 굶어 가면서도 왜 손에서 그림을 놓지 못하는가….

외롭게, 어렵게 외길 가다가 가까스레 전시회를 마련했으면 벽 하나에 온갖 그림을 꽉 채워 그 중에 하나라도 누군가에게 뽑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넓은 벽에 작품 하나가 마치 생명 있는 보물이나 되는 것 처럼 멀리 뚝 띄어서 겨우 몇 개만 걸어 놓는다.

이 길을 걸었기에 일반대중으로부터 선망과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창조된 작품이기에 애호가의 가슴을 뚫고 들어 오는 것 아닐까. 작품 속에 작가의 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올라나’ 벽에서 프레드릭 처치 뿐 아니라 미국인 화가들의 혼이 느껴졌다.

아마추어 화가들이라든가 관광객 얼굴을 그려주는 거리의 화가라든가 심지어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못 그려서 화가를 부러워 하는 일반인들까지도 모독해가면서, 그림을 그리는 가짜 화가가 이 세상에는 꽤 있다. 그런 그림을 사주는 가짜 애호가도 이 세상에 꽤 있는 것 같다.

저 먼 동양의 작은 나라, 어느 시골 구석 이발소를 장식해 준 ‘허드슨 리버 스쿨’ 그림들이 참 아름답다. 이발 하는 사람들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단 한 가지 목적으로 걸려있던 가짜 그림이, 없는 돈을 써가면서 그림을 산 이발소 주인 아저씨의 순수한 마음이 정말 아름답다.

<노려/전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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