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디지털시대 올리가키

2022-04-27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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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에서 보면 ‘올리가키(Oligarchy)’란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올리가키란 소수 권력자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그리스어 oligarkhia에서 유래한 합성어라고 한다. ‘소수’를 뜻하는 oligo와 ‘지배하다’라는 의미의 arkhein를 붙인 단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일찍이 조 바이든 행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올리가키 측근들을 겨냥한 제재를 시작했다. 서방이 러시아를 SWIFT(국제결제시스템)에서 강제 퇴출시킨데 이어 러시아 재벌들의 초호화 요트 압수에 들어간 것이다.

이를 통해 온갖 호화 자산이 속속 압류되었다는데, 그 중에는 개인 헬기 이착륙장에서부터 호화 체육관까지 있다고 한다. 프랑스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회장 소유의 여러 척의 요트를 압류했고, 독일은 러시아의 '철강왕'이라 칭해지는 우스마노프 소유 6억달러 상당의 호화 요트를 압류했다는 것이다.


올리가키란 푸틴에게만 있는 것일까? 전세계 모든 나라의 최고 권력층 주변에 포진해 있을 것이다. 올리가키는 한국의 재벌처럼 권력과 유착해 기생하는 부류다. 이들은 조세피난처나 페이퍼 컴퍼니 같은 통로를 통해 섬세한 법적인 예외 조항을 적용시키면서 얽혀 있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올리가키 슈퍼 리치들은 아마도 미국에 더 많이 있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상상을 초월한 재산으로 사회 곳곳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부의 이동이 여성들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혼이나 상속으로 말이다.

애플의 창업주 고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런 파월 잡스가 지닌 자산 규모는 10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그녀는 유산 상속으로 남편 덕에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 되었다. 그리고 몇 빌리언 달러를 기후관련 회사에 기탁했다고 한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 잡스를 만나 1991년 결혼한 그녀는 160년 전통의 잡지 ‘Atlantic’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기후 행동 단체인 ‘웨이벌리 스트리트 재단’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냥 돈 많은 여성이 아니라 미국내 여론 형성에 돈으로 확실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중 하나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주 빌 게이츠도 이혼을 통해 아내 멀린다 게이츠에게 큰 부를 이전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빌 앤드 멀린다 재단을 통해 웬만한 미국내 언론사보다 더 큰 사회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혼 후에도 함께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조스의 전 부인 맥켄지도 이혼하면서 300억달러 이상의 거액을 위자료로 받았다. 당연히 그 자산과 연결된 모든 기업과 재단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히 커졌을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의 최고 디지털 부호인 김정주씨 사망으로 그의 부인 유정현씨도 미국 여성 슈퍼리치들처럼 상당액의 재산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고 김정주씨 재산은 389억 달러 상당으로 지난 2021년 9월 포브스 기준 한국 부자 순위 2위였다. 그녀도 과연 미국의 여성 부호들처럼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까.

지난 30년간 디지털 기술 혁명으로 세상의 부는 디지털 기업인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의 사회적 영향력의 독점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우려해 최근 한 설문 조사에서 미국인 응답자의 80%가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은 빅테크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더욱 강력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아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응답자가 84%나 되었다.

이혼과 상속을 통한 올리가키 여성들의 자산은 앞으로도 전문 관리인을 통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들 기업의 영향력이 공정한 민주주의까지 해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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