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생각 - 뉴욕시 수선화

2022-04-14 (목) 윤관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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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 베이사이드에 위치한 크로체론(Chrocheron )공원 한 모퉁이에 있는 작은 연못에 왔다. 수양버들이 연초록을 띄고 있고 물위에는 청둥오리들과 캐나다 구스들이 어울러져 노닐고 있다.

부근에 있는 오클랜드 호수 (Oakland Lake)보다 훨씬 작고 덜 알려진 아담한 연못이다. 연못 주위를 한 바퀴 돌려고 오른 쪽으로 걸으니 다람쥐가 숨겨둔 도토리를 찾는지 분주히 뛰어다닌다. 물가로 쓰러져 있는데도 새싹을 내는 큰 나무들이 보인다. 더 걸어가니 수선화들이 웃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나르키소스(Narcissus)라는 청년이 연못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다음 그 자리에서 수선화가 피었다고 한다. 뉴욕시 수선화 사업(NEW YORK CITY DAFFODIL PROJECT) 글자가 선명한 종이가 투명한 비닐에 싸여 수선화 무더기 옆 나무에 걸려있다.


뉴욕시 수선화 사업은 3000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911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2001년 가을부터 네델란드 수선화 구근업자와 시민들이 뉴욕시에 선물한 수선화 구근들을 해마다 가을에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공원, 운동장, 공터, 보도화단들에 심어 온 사업이다.

이 사업으로 이듬 해 봄부터 곳곳에서 수선화를 보게 되어 뉴욕시가 더욱 아름다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911테러 희생자 뿐만 아니라 코로나 사태 희생자도 기리고 있어 해마다 심겨지는 수선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맨하탄에도 봄철에는 거리 화단에서도 수선화를 쉽게 볼 수 있다. 2007년 4월 블룸버그 시장에 의해 수선화가 뉴욕시 공식꽃으로 선정되었다.

나는 연못 주위를 한 바퀴 돌아 황금 연못 (GOLDEN POND) 표지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본다.
노란 수선화의 꽃말은 좋아하는 사람을 잊지 못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얀 수선화의 의미는 존경과 신비이다.

뉴요커들이 수선화를 볼 때마다 사랑의 그리움을 되살리기 바란다. 서로 신비로운 존재로 여기고 존경하며 화평스런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뉴욕시 수선화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가슴에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사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야말로 ‘Golden Project’ 이다.

<윤관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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