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 어느 시니어 모델의 데뷔

2022-03-17 (목) 리차드 전/웨체스터독자·시니어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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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긴 했지만 기회가 온다면 한번 모델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지내오던 작년, 어느 날, 우연히 한국일보 광고난에서 기회를 찾았다.

전면광고여서 찾기도 수월했지만 기쁨과 실망이 크게 교차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참가자격; 45세부터 70세까지 성인남녀 ’, 바로 이 문구가 기쁨의 상속 곡선을 실망의 하향곡선으로 급강하 시키는, 마치 롤러코스를 탄 기분이었다. 어찌 미국에서 이런 일이, 아니, 내 나이가 어때서, 잠시 자괴감도 들었지만 내 나이를 밝히고 싶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3주 정도 지나서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다시 광고를 접하였는데 이때는 문의하면 나이 조정이 가능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밑져야 전화 한 통인데, 희망을 걸고 통화를 한 결과 “걸으실 의욕만 있으면 됩니다. ” 였다.


간단한 서류 작성과 카메라 테스트, 그리고 심사결정 통보에 따라 지원자 30여명 정도가 모델 워킹 교육을 받게 되었다. 워킹 교육을 2주, 교육 장소는 퀸즈에 있는 아스토리아 월드 매너였다.

나는 몰랐다, 아니, 우리들은 몰랐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육군 신병교육에 준하는 모델 워킹 과정이 기다릴 줄이야.
총감독은 정소미님, 서울에 있는 더 모델즈 아카데미의 대표겸 행사 연출 감독이며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분이었다.

워킹교육은 매일 오후2시부터 6시 이상까지 행사일자는 11월27일 토요일 오후6시, 행사일 딱 2주 남겨놓고 시작하는 아주 빡빡한 일정이었다.

의욕만 있지 모델 워킹, 교육을 받아본 일이 없는 교육생으로서 본 것은 많아서 아는 것은 많은데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오랜 개인생활 탓에 단체생활이 부담스러운 교육생이다. 한두 명만 빼고는 모델 경험이 전혀 없는, 무질서하고 절도 없는 이 집단을 총감독은 차근차근, 절도있게 특유의 솔선수범으로 꽉 잡아나갔다.

오로지 뉴욕한인 이민 역사에 남을 시니어 모델 행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인3역, 4역을 마다치 않았다. 모델 워킹 교육 2주내내 20분 정도 휴식 외에는 항상 서 있었다.

총감독은 개인 전용의상이 15벌 정도라고 생각되는데 하루 2번 정도 음악의 무드에 따라 전부 입어보이고 워킹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손 동작, 얼굴 표정 관리까지 세밀히 보여주었다.

또 교육생들의 적지 않은 의상들과 심지어는 액세서리까지 입고, 걸치고 포즈를 취하여 교육생들이 모델로서 화려한 날개짓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었다. 그 열정 넘친, 솔선수범의 경지가 대단했다.


명장 밑에 약졸은 없는 법. 행사당일 이른 아침부터 브루클린 브릿지 아래에서 매서운 겨울의 찬바람을 원피스 한 장으로 막으면서 감행했던 야외 사진촬영을 마친 교육생들은 화사한 모델로 변신되었다.

이렇게 우아하고 클래식한 패션쇼가 성황리에, 아무런 사고 없이 막을 내렸다.
우리 모델들은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족들과 동료들과 기쁨을 같이 하였고 이 기쁨은 이 순간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오랜 세월 구상,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 뉴욕 시니어 모델의 대부이자 감독 박상훈 님의 정성으로 이뤄졌다. 박상훈 감독을 만난 것은 우리 모델들에게 큰 행운이었다.

뉴욕한인사회 최초의 시니어 모델 패션쇼를 후원 해준 한국일보, 뉴욕 시니어 모델들의 오랜 숙원을 큰 부담없이 풀어준 박상훈 감독, 교육 후 지친 몸으로 교육생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다독여주던 정소미 총감독, 평소 익숙 하지않던, 그것도 7인치, 9인치의 하이힐을 신고 발 아파 하던 모델들, 그리고 쇼의 성공을 위해 물심양면 성원해준 가족들과 행사 관계자 여러분들, 함께 해서 행복했다.

2022년 제2회 시니어 모델을 모집한다니 벌써부터 설렌다.

<리차드 전/웨체스터독자·시니어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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