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경락의 법률 칼럼 - 원격진료의 명암

2022-03-16 (수)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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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건복지부의 작년 12월 통계에 의하면 텔레메디신(telemedicine) 건수가 코로나-19 발병 전인 2019년 한 해 84만 건에서, 팬데믹 후인 2020년에는 5,300만 건으로 1년 만에 무려 63배나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텔레메디신이란 의료진이 환자와 다른 장소에서 원격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일컫는데, 여기에는 화상통화를 비롯하여 환자 모니터링, 의무기록 관리, 원격 디지털 의료장비 사용 등이 포함된다.

인류가 꿈꾸어오던 메디컬 유토피아의 세계 텔레메디신이 그동안 각종 규제로 답보상태에 머물다 생각지 않았던 팬데믹을 계기로 재택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일상화되면서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다.


텔레메디신의 장점은 무엇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의사를 만날 수 있고, 대면 진료보다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다음의 사례에서 예상 문제점을 진단해본다.

2012. 2. 17. 정오 무렵 뉴욕주 교도소 복역수 마빈 스나이더(29세, Marvin Snyder)는 가슴에서 시작된 심한 통증으로 급히 구내 간호실을 찾았다. 주간 간호사는 EKG를 부착하고 심전도 검사를 시도했으나 기계가 작동되지 않아 카운티 병원에 원격진료를 의뢰했다.

교도소의 의무기록을 토대로 환자를 화상으로 진찰한 카운티 병원의 보조 의사(physician assistant)는 환자의 신체 상태로 보아 일시적 통증이라고 판단, 타이레놀만 처방하고 스나이더를 감방으로 되돌려 보냈다.

하지만 저녁 10시가 되어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다시 간호실을 방문한 결과 야간 당직 간호사는 EKG 기계를 재 부팅하는 데 성공하여 그가 심장마비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목숨을 건진 스나이더는 퇴원 후 의료진의 초동 대처 미흡으로 장시간 불필요한 고통과 아울러 더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며 교도소 의료 관계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통상 의료 소송에서의 쟁점은 의료진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지 않고, ‘의료계의 표준 관행’에 맞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여부다.

이 소송의 결과가 팬데믹으로 텔레메디신이 한창 주목을 받던 2020. 12월에 알려졌다. 뉴욕주 법원에 의하면 간호사는 일단 카운티 병원에 텔레메디신을 요청했으므로 ‘의료계의 표준 관행’에 맞는 조치를 취했다고 판단하고 스나이더의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심장병 증세 환자에겐 필수적인 심전도 검사를 거치지 않고 스나이더를 그냥 되돌려 보낸 카운티 병원 의사의 처방은 과실이 있다 하여 재판에 회부했던 것이다. 그 후 더 이상 후속 자료 추적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합의로 사건이 종결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아무래도 의사가 직접 환자를 대면하지 못하다 보니 스나이더처럼 필수 검사를 생략하여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둘째, 의료장비가 부족하거나 일부 함량 미달의 동네 의료진이 응급 상황에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법적 기준으로 삼는 ‘의료계의 표준 관행’이란 게 급속한 의술의 발달, 개별 의료인의 실력 편차, 어느 주에서 의료행위가 이루어졌는지 등 각 변수가 너무 많아 이것을 자로 재듯 정량화하기 어렵고, 또 사후 이를 사법적으로 판단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점 등이다.

따라서 보다 세부적이고, 연방 차원에서의 표준화된 법규가 조속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막 탄력 받기 시작한 텔레메디신 열차도 팬데믹 종료와 함께 서서히 동력을 멈출 것으로 우려된다.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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