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나의 친구들
2022-03-10 (목)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나에겐 오랜 두 친구가 있다. 하나는 나와 함께 역사를 전공한 대학교 동창이다. 평생을 고등학교 역사 선생을 하다가 은퇴한 친구다. 그는 충청도 시골에서 면장을 지내신 부친과 대가족이 사는 집안 출신이다. 대학 다닐 때 그 친구 시골집에 가면 어머님이 항상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냥 인사말로 하는 친절함이 아니라 옛날 아주머니의 구수함이었다. 한번은 대충 언제쯤 간다고 친구에게 연락해놓고 (그 때는 그런 식으로 살았었다.) 그 친구 시골집에 찾아 갔었다. “안녕하세요. 대현이 있어요?” 불쑥 찾아간 나에게 그 친구 어머님이 “대현이 없는데 며칠 후에 오겠지. 한 며칠 있어 봐.” 그게 다였다. 그러면 나는 여러 날 숙박비도 내지 않고 그 집 식구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그 친구를 만났었다. 친구의 할아버지는 그 당시 96세셨는데 정정하셨다. 장수하는 집안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한 70세 정도로 보이셨는데 90이 넘으신 분을 뵙기는 그 때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 담소하고 장기 두는 노인정에도 잘 나가시지 않으시고 묵묵히 농사일만 하셨다. 그 연세에 지게를 지고 일하러 다니셨다. 내가 그 친구에게 물었다. “할아버님은 왜 동네 노인정에도 나가시지 않고 혼자 지내시니?” 그 친구의 대답이 애들 노는 데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 동네에서 90년 이상을 사셨으니 그 할아버지 젊으셨을 때 다른 할아버지들은 코흘리개였던 것이다. 친구 말에 의하면 그 할아버지께서 동학 난 때 동학군이 이쪽으로 오면 일본군이 저쪽에서 와서 싸웠다는 전황을 말해 주었다고 한다. 동학 난이면 1894년 아닌가? 내가 그 친구 집에 갔을 때가 1976년 쯤 이고 그 때 96세셨으니 그 할아버지는 1881년 생 정도 되셨을 것이다. 그러니까 13세 소년의 눈으로 그 때의 상황을 정확히 보았을 것이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징병으로 태평양 전쟁에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 오셨었다. 그 때 이야기야 우리 부모님께도 들었던 바니 새롭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 집안사람들의 이야기는 곧 살아있는 역사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지내는 총각이니 한국에 가면 편하게 그 집에 머문다. 나는 아직도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그 친구가 좋다. 푸근하고도 오래된 벗이다.
또 한 친구는 중고등부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교회 죽마고우다. 공부를 잘해 지금은 명문대학을 나오고 이비인후과 원장이 되었다. 집이 가난해 중 고등학교 때에는 늘 내가 그 친구를 사주었는데 지금은 한국에 가면 그 친구가 좋은 식당에서 나를 대접해 준다. 앞으로 평생 그럴 것 같다. 내가 항상 교회 회장이었고 그 친구는 총무였다. 내가 회장을 마친 후에 그 친구가 회장이 되었지만. 부회장은 여학생이었다. 둘이 죽이 맞아 참 친하게 지냈다. 둘 다 잡기에 능했는데 바둑은 내가 더 잘 두었고 그 친구는 탁구와 당구를 잘 쳤다. 중고등부 때에는 교회에서,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세속(?)의 세계에서 함께 어울렸다. 늘 시간에 쫓기던 그를 만나려면 밤에 병원 응급실에 찾아가야 했다. 밤 근무하는 그를 찾아가 밤새워 노닥거렸다. 그를 졸지 않게 하는 것도 내 임무였다. 공부 잘했던 그는 대학 다닐 때 고3이었던 내 여동생 가정교사로 우리 집에 오곤 했다. 공부가 끝나면 내 방으로 와서 밤늦도록 기타 치며 바둑 두며 어울렸다. 음식에 소질 있던 내가 야식으로 파전이라도 몰래 해가지고 오면 왜 그렇게 좋던지. 나의 중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그 친구였다. 그런데 참으로 아쉽다. 그 대학 동창도, 교회 친구도 전도가 되지 않는다. 몇 번을 권하고 노력해 보았지만 안타깝다. 때가되면 기회를 주시겠지. 지금은 목사 친구들도 있고 신앙인 장로님, 집사님들도 있지만 나의 마음은 아득한 그들에게 가있다. 얼마 전 내가 한국에 갔을 때 그 대학 동창이 귓병이 들어 이비인후과 친구에게 함께 갔었다. 진료 후 함께 식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나이가 들면 옛날 일을 생각한다고 했던가? 나도 이제 마음은 청춘인데 어쩔 수 없이 그 세대가 되어가나 보다.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