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론 - 호랑이 해

2022-01-20 (목) 성향스님/뉴저지 원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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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임인년(壬寅年)’ 호랑이 해가 시작되었다. 국토의 4분의 3이 산으로 이루어진 한국은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여 ‘호랑이의 나라’로 불렸다. 한민족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단군신화(檀君神話)는 곰과 호랑이로부터 시작한다.

또한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부리는 군자의 나라’의 사람들로 일컬어지고 해마다 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전해질 만큼 호랑이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불교·기독교·천주교·유교·민간신앙 등 샤머니즘까지 어우러져 함께 공존하는 독특한 종교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종교가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며 서로 혼합을 이루는 현상을 습합(習合)이라 하고 이것을 종교혼합주의(Syncretism)라고 한다.
『예기』권 3에‘ 천자가 악사에게 명하여 ‘예악을 습합하라(乃命樂師習 合禮樂)’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습합을 ‘조절’·‘조화’의 의미로 썼다.


그러나 현재‘ ‘습합’이란 두 문화가 절충하여 서로 변모하고, 다른 문화를 만들어가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습합을 통해 외래문화와 전통문화가 만나서 새롭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철학이나 종교 등에서, 서로 다른 학설이나 교리 문화를 절충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고유 신앙이라 할 수 있는 민간신앙과 인도에서 발생하여 전해진 한국 불교에 다른 나라에 없는 칠성각과 산신각을 모시고 북두칠성과 산신(호랑이)이라는 민속신앙과 불교가 조화롭게 융화되어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불교에서는 훈습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좋은 향을 배게 하면 그 향기가 풍기게 되는 것처럼 몸과 말, 마음으로 노력하면 그것이 마음에 잔류하게 됨을 이르는 뜻으로 불법을 들어서 마음을 닦아 나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불교와 민간신앙의 융화된 시기를 대체적으로 삼국시대인 5-6세기 이후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원인은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외래문화를 받아들이고 한국적인 새로운 불교의 대중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외래종교인 불교가 한국에 들어와 기존의 토속 신앙과 종교적 사상체계 더 나아가 당시 사람들과 조화롭게 상호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잘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사찰의 전각 가운데 하나인 산신각(山神閣)은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이 탱화로 봉안되어 있다. 호랑이를 산신이거나 산신을 보좌하는 영물로 그려졌다. 이것은 한국불교가 우리민족의 신앙에 토착화된 것을 보여준다. 많은 사찰에는 정면을 응시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호랑이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호랑이의 용맹성을 빌린 벽사와 수호 의미를 지닌다. 또한 선가에서는 선지식의 할을 호랑이의 포효에 빗댔다. 불교에서의 호랑이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타고 다닌다. 문수보살이 중생에게 지혜를 전할 때 호랑이와 함께 나타난다. 불교에서 호랑이는 위엄과 용맹함, 지혜를 수호하는 영물로 인식된다.

위풍당당한 호랑이의 모습과 기백은 우리민족의 자긍심으로 상징되어 역사 속에 면면히 살아 숨쉬고 있다. 한국은 호랑이의 나라이다. 2022년 임인년 모두가 호랑이처럼 자신있게 포효하고, 혼란한 시절 지혜롭게 극복하는 뜻깊은 한 해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면 좋겠다.

<성향스님/뉴저지 원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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