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 ‘호르몬과 페로몬’

2022-01-17 (월) 김창만/목사 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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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내분비샘에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 호르몬은 인간의 몸 내부에만 영향을 끼친다. 호르몬은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인간의 몸속에서만 순환한다.

개미가 두려움이나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 호르몬이 몸 내부에서 순환 할 뿐 아니라 몸 바깥으로 나가 다른 개미들의 몸으로 들어간다. 몸 밖으로 나가는 호르몬이 페로몬(pheromone)이다.

이것이 있는 덕분에 개미들은 한 마리가 소리치거나 울려고 하면 수백만의 개미가 동시에 같은 상태가 된다. 남들이 경험한 것을 똑같이 느낀다는 것, 자기 자신이 느낀 것을 남이 똑같이 느끼게 한다는 것은 놀라운 감각임에 틀림없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지식의 백과사전’ 중에서)


인간은 개미나 생쥐처럼 페로몬 냄새를 잘 맡을 수 없다. 페로몬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제2의 보조후각시스템인 야콥슨 기관(Jacobson’s organ)이 퇴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유로 인간은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발화(發話) 능력이 어느 피조물보다 탁월하다.

인간의 언어소통 능력은 놀랍게 발달했다. 하지만 야콥슨 기관이 발달한 개미처럼 공동체 전체가 함께 공감, 공명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인류의 언어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어서 인류 공존과 번영에 위협이 되고 있다.

거머리같이 달려드는 사울의 도발을 침착하게 잘 견뎌내던 다윗은 나발의 자존심 상하는 말 한마디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다윗은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이는 가신 400명을 동원하여 중상모략자 나발을 단칼에 없애려고 결심했다.

다윗의 분노의 언어와 복수심을 막아서서 설득한 사람은 연약한 여성, 아비가일이었다. 무지막지한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은 천상의 부드러운 언어로 다윗을 설득한다. “내 주여 청컨대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아비가일의 겸손하고 온유한 말을 듣는 순간 이성을 잃고 분노하던 다윗은 제정신을 찾았다. 자신에게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다윗의 극적 뉘우침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다윗과 아비가일 두 사람의 언어가 안에 갇혀있지 않고 몸 밖으로 나와 교환했기 때문이다.

공동체 관점에서 볼 때 자급자족을 외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틀렸다.

<김창만/목사 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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