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 대접받는 이웃집 쓰레기통

2021-12-31 (금) 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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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가로누운 쓰레기통을 일으켜 세워 집안으로 들였다. 앞 뒤 이웃집들 쓰레기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것은 거의 차도에 가깝게 내팽개쳐져 있다. 아직 저만치 쓰레기 트럭이 서 있고 두명이 재빠르게 쓰레기통들을 비워내고 있다.

쓰레기통을 털어내고 물건 던지듯 쓰레기통을 던지던 이가 한 집 건너 집 쓰레기통은 다소곳이 들고 그 집안까지 갖다 놓는다. 그 집 지나서는 같은 식으로 쓰레기통을 집어던진다.

그것을 눈여겨보던 1층 사는 이가 ‘어머 저 집 쓰레기통은 대접을 받네요’해서 ‘오 그러네요’하며 서로 보고 웃었다. 대접 받는 쓰레기통이란 얘기가 우습기도 하지만 뭔가 여운을 남겼다.


집에 들어와 창문을 통해 여기저기 엉뚱한 자리에 덩그러니 자리잡은 쓰레기통들을 살피며 나를 돌아본다. 연말이면 그렇게 수고하는 분들께 작은 보답을 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때로는 팬데믹으로 닫힌 마음 때문인지 그것을 잊었다. 주위 살필 겨를이 없었음이다.

그렇다. 이 작은 변화도 감지 못하고 살았다. 갑자기 마음의 여유가 떠오른다. 상황 따라 마음이 다르게 작용한다는 것. 자신도 모르게 각박해진 모습. 긴 호흡으로 대신하는 마음에 알듯 모를 듯 미소가 머금어진다. 누군가의 대접 받는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 속에 깃들어있음을 일깨워 준 날이었다.

글쓰는 일 ‘잠시 미룸’이 두 달 이라니, 뭐에 홀렸는지 마음 정돈이 흐트러졌다. 청명하고 드높은 푸른 가을 하늘과, 11월 산야의 붉은 단풍, 채환님 공연,그리고 혈육의 이별 등. 희로애락의 깊은 굴곡에 마음 뺏긴 것이다. 건강 해야한다. 잘 먹어야 한다. 삶 그 현상유지를 위해 시시때때 먹고 마시는 행위는 쉴새없이 되풀이했다.

허망한 시간 메꾸는데 유튜브가 한 몫 했다. 오감을 자극하는 제목들에 끌려 방향 잃고 좀 헤맸다. 정치판의 비정상적인 인간들에 신경 쓰고, 누군가의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무의미함을 알아차리다. 자신을 추스릴 수 있음에 혼자 웃는다. 나를 잃는다는 것은 내 정신세계를 잃음이다. 결국 전부를 잃는 것. 심신의 균형을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꿈에서 깨어나듯 지금을 감지하고 느끼는 여유. 마음이 분주하지 않다. 주위를 돌아보는 눈길이, 마음이, 편안하다. 잡다한 일상의 일들이 소중하다. 지금의 내가 있도록 인연 된 모든 분들의 모습과 마음들이 보인다.

어렵고 힘들 때 다가와 주신 여러분들의 격려와 도움이 보석처럼 귀하게 나를 감싸고 있다. 불교방송 후원받음은 모든 분들을 대접하는 마음이다. 대접받는 쓰레기통은 그 주인이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사에 깨어 있으라고 스스로에게 다짐 준다. 한 해 동안 받은 고마움에 드려야 할 인사가 산처럼 쌓인다. 일상에 방해가 된다.

‘단순하게 편안하게’라는 마음으로 불편함을 털어낸다. 고마움은 자신의 수행으로 보답 하겠다며 호흡에 집중한다. ‘우리의 관계란 보이지 않은 보배망으로 촘촘히 얽혀져 있다’는 법문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한사람 한사람의 역할이 진심으로 소중하고 귀함을 이보다 더 한 얘기로 대신 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대접하고 대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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