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 새벽송

2021-12-21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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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크리스마스 풍경 중에 새벽송이란 전통이 있었다. 성탄일 새벽, 교인들이 가정을 방문하여 성탄 찬송을 부르는 풍습이다. 그러면 그 가정에서 떡국 같은 더운 음식을 대접하였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부산에 피난을 가서 성탄일을 맞아 우리 몇 사람이 한국의 전통을 따라 새벽송 성가제를 만들고 미군 부대를 방문하여 새벽송을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에 전쟁 때문에 와서 외롭던 미국 군인들이 잠을 안자고 있다가 우리의 새벽송을 듣고 모두 밖으로 나와 그들은 영어로 부르고 우리는 한국말로 부르고 국제적인 새벽송이 캄캄할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돌아가려고 하자 미군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모든 대원들에게 큰 상자 하나씩을 안겨 주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우리는 일단 교회로 돌아가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미군이 일선에서 먹도록 보내온 음식들이었다. 당시 미국 과자라면 최고로 알던 우리 성가대원들은 너무 기뻐 “전도사님 내년에도 미군 부대 방문을 합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부산 피난 중 두 번 미군 방문을 하고 서울로 환도 하였다.


지금은 세계를 석권한 예수의 탄생도 처음은 무척 초라한 것이었다. 낳은 곳은 벽촌 베들레헴, 여행 중이었던 요셉과 마리아는 갈 곳이 없어 어느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았다. 짐승의 밥통인 구유에 아기를 누일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밤에 양을 치던 목자들이 방문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동방박사라고 일컫는 학자이거나 어느 나라 왕들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세상을 구원할 임금의 탄생이라고 하며 아기께 경배를 드려 마굿간이 밝아졌다.

멀리서 찾아온 동방박사들은 그리스도의 탄생 장소를 알아보려고 그 당시 로마가 파견한 통치자 헤롯을 찾아가 물었기 때문에 헤롯은 대단히 놀라 두 살 밑의 모든 유대 아이를 학살하는 대 범행을 자행하였다. 이를 피하여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멀리 이집트까지 피난을 가야만 하였다.

이처럼 예수는 탄생부터 위험과 고난 속에 살아야만 하였던 것이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노동 속에 생애를 보내고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고생스런 생애를 보냈다. 지금은 그의 제자가 수 억 명에 달하나 그가 살아서는 겨우 열 두 명의 제자 뿐이었으며 그나마 한 명은 스승을 배신하였다.

예수는 서른 살에 전도를 시작하였다. 그 기간도 겨우 삼년간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말씀은 성경이 되어 전 인류의 복음이 되었다. 그가 진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진 구원의 십자가가 되어 모든 교회의 상징이 되었다. 십자가를 장식품으로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한다.

예수의 이름은 수 많은 모양으로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지고 있다 학교가 세워지고 병원이 세워지고 많은 구호기관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워졌다. 한국에서도 현재 교육 현대 의료사업 등이 생겨난 것도 기독교의 활동이었다.

그래서 여러 나라들이 기독교를 현대화의 선구자로 보고 있다. 기독교는 앞으로도 앞서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보수화 경향이 커지는 것은 기독교의 사명이 아니다. 언제나 기독교는 진취적으로 세상을 앞서가는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감리교가 시작한 웨슬리 구락부와 계명협회, 장로교가 시작한 성경구락부 등 문맹 퇴치 사업들도 기독교의 활동이었다. 사회사업으로도 세계선명회 등 기독교의 봉사사업이 활발하였다.

특히 기독교는 한국의 여성 교육을 시작한 것은 큰 공적이다. 일본 통치에 저항하는 삼일운동을 위시한 독립운동도 기독교가 선두에 섰던 것을 전 국민이 알고 있다. 예수가 앞서가는 예수였듯이 기독교도 앞서가는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전통만 지키는 보수주의, 허겁지겁 따라가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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