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가을의 연서

2021-12-02 (목) 이선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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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가을이 불을 지폈다 빠렛드의 물감만으로.
그릴 수 없는 오묘한 풍경은 더 없는 명작이다

하룻밤 비바람, 때를 몰랐으리 갈잎은
대책없이 진탕으로 내려앉아 처연한 눈물,

나무는 다시 오는 봄을 기약하지만
우리는, 돌리지 못할 세월 동여잡고
덧칠 거듭 하는 화가는 아닐는지


처음 그때, 순결한 백색이었지, 나름대로 최선이라,
별빛 가득 꿈꾸며 그렸지
그때, 스케치 속에 그리지 못한 단 하나의 정점으로
망쳐버린 화폭,
그런데, 망가져 버려진 그림조차도 목숨 내주고
사려는 그가 있어 다시 살아났지
그제야 알았어 절벽 끝 낭떠러지에서
더 확실히 보이던 임의 모습,

나는 오늘도, 임 만나는 청색 꿈을 꾼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선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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