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영원한 육사동기

2021-12-01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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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Korea Military Acade my. 일명 ‘화랑대’로 불리던 곳. ‘호국강군의 요람’이란 취지로 1948년 5월 1일 창설된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로 지금의 육군사관학교 전신이다.
1기에서 7기까지 배출된 경비사관학교 졸업생은 약1,800여명, 오늘의 주인공 노태우와 전두환은 육군사관학교 또는 육사로 불리는 엘리트 학교의 정규 1기 입학생들이다.

전두환은 1951년 입학, 11기로 졸업했다. 그는 한직에서 점차 군내 모임인 오성회(하나회의 전신)에서 육군 내 신진 엘리트들과 교류했다. 오성회는 육사 동기중 영남 출신인 전두환, 노태우 등 5명에 의해 조직됐다고 한다.

마침내 전 전 대통령은 육사 동기들을 중심으로 육군 내 특수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했고, 군 내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이들 엘리트 정규 육사 초기 졸업생들은 국내 정치인들이 국방 의식이 전혀 없다는 점에 큰 위기의식을 느꼈을까.

노재봉 전 국무총리는 지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결식 추도사에서 “정규 육사 1기 졸업생들이 문맹률 80% 수준이었던 한국사회에 대한 큰 소명 의식을 느끼고 있었고,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통치 기능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1979년 당시 육군 9사단장이던 노태우와 동기생 전두환이 중심이 된 하나회 세력의 도움으로 현실이 되었다. 그해 12월 12일 군부 내 하나회 세력은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당시 막강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대장을 강제 연행했다. 박정희 대통령 피살 당시 김재규와 공모했다는 혐의로 체포한 것이다.


결국 하나회 세력은 이런 하극상을 통해 권력을 취하게 되었다. 그날의 진실은 아무도 모르고, 역사는 먼 훗날 그 답을 해줄 것이다.

막강한 하나회의 핵심이자 제13대 대통령을 역임한 노태우씨가 몇 달 전 89세로 서거했고, 지난 11월 23일 전임 대통령인 전두환씨도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육사 동기이자 대통령 후계자인 돈독한 동지로 ‘5공 청산’ 반란수괴 혐의로 무기징역, 5.18사건 선고 공판 등 여러 재판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 서기도 했다.

그들의 운명은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후 하나회를 본격 숙청하면서 점차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가 있으면 공도 있게 마련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초로 새 헌법에 의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후임자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방식으로 퇴임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 저항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이다’, ‘미국의 회유와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등 해석이 분분했다. 하지만 결과는 눈앞에 다가온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평화적인 정권 이양으로 정부의 정통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올림픽이 마침내 평화롭게 치러지게 되었고, 한국이라는 빈곤국이 경제적으로 우뚝 서는 결과를 가져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육사였지만 올해 한국과 미 육사 사이에 경사도 있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졸업생들의 추모비가 서울 육사 캠퍼스 안에 세워졌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육군사관학교는 높은 입시 경쟁률에도 불구, 자퇴생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정신과 육체가 강해야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 한국 육사 임관식에서 5년만에 처음으로 남자 생도가 수석을 차지해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 육사도 남녀평등과 메리트기반의 교육이 보장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 육사1기생들의 운명적 역사는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제부터 새 시대 생도들이 앞날을 밝힐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더디게 가는 것 같아도 국방부의 시계는 돈다’는 말이 있다. 전두환씨의 조문객 시민 행렬이 줄을 잇는다는 보도를 보면서 모든 것은 역사가 알아서 평가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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