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잊혀진 사람들”

2021-11-26 (금) 써니 리/ 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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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고 광주항쟁을 잔혹하게 진압한 전두환과 노태우 전대통령이 사망하자 그에 대한 평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두환은 7년의 임기를 마쳤지만 30년이 훨씬 넘는 시간들을 광주항쟁 살인마로 낙인 찍혀 퇴임 후 백담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감옥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은 후 구차한 말년을 보냈다.

반면 노태우는 뼈저리게 후회한다며 아들을 수차례 광주로 내려보내 사과를 하기도 했다. 노태우는 일말의 양심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현대사에서 인권과 민주화운동 탄압의 정점에 서며 온갖 부정부패와 친인척 비리로 얼룩진 전두환과 달리 노태우는 북방정책을 추진하여 러시아와 중국과 수교하며 한국무역경제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남북합의서를 이끌어 내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이승만부터 박정희, 전두환에 이르는 40년간의 독재와 탄압을 완화시켜 한국이 민주화로 가는 과도기 역할도 했다며 그의 업적을 평가한다면 대한민국 현대사를 바로 세우는데 커다란 우를 범하는 것이다.


일찌기 이승만은 한국전쟁 중에 보도연맹원 학살과 빨치산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거창양민학살 등을 통해 수많은 무고한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전쟁 중에 지키고 보호해야 할 자국민들을 공산주의자들과 내통했다며 반공법으로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더욱이 방산비리로 50만 명의 국민방위군 중 10만 명이 아사했고 나머지 80%이상도 폐인이 되었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공산화를 막았다는 그의 업적은 자국민 학살과 각종 부정선거를 통한 독재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그의 과오를 결코 상쇄시킬 수 없다. 박정희 또한 쿠테타 초기부터 한국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든 증권파동과 각종 부정축재와 민주화 세력의 탄압으로 그의 죄과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국민이 그토록 원하지 않는데도 유신헌법으로 종신 권력을 잡으려 한 그의 독재는 경제발전이라는 공적을 내세워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저지른 패악질을 멈추게 한 것은 시민혁명이었다. 이승만은 4.19혁명으로 쫒겨났고 박정희는 부마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려는 찰나에 부하의 총탄에 비명횡사했다. 그의 딸인 박근혜도 국정논단에 분노한 전국민 총궐기로 감옥에 간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은 국민들을 학살하고 탄압하고 폭압의 공포정치로 민주주의를 거스르며 대한민국을 오욕의 역사 속으로 몰아갔다. 그것을 단죄한 것은 결국 국민들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경시하고 탄압했던 국민들이 국가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린 것이다. 그들의 업적이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을 탄압한 죄과를 결코 상쇄시킬 수 없다.

반면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에 이르는 민주정부 기간에는 IMF사태가 터지고 북핵으로 한반도 안보위기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탄압하는 공포정치를 펼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충실히 수행하려는 노력들이 사회 각계각층의 민주화를 일구어 냈고 한국형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는 성숙한 사회가 된 것이다. 국민이 주인다운 삶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것을 역행한 것이 박근혜와 이명박이다. 국민을 경시하고 부정부패를 획책한 그들은 결국 감옥에서 비참한 말로를 보내고 있다.

광주항쟁의 정신을 숭고히 하려는 문재인 정부를 이어받는 새대통령은 반드시 국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땅의 참다운 주인인 국민들의 주권이 제대로 행사되도록 국민들을 받들어 나가는 정치를 펼쳐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은 비록 비명에 갔지만 아무리 오랜시간이 흘러도 한국적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린 그의 정치철학을 가슴깊이 그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써니 리/ 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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