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케노샤의 비극

2021-11-2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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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어느 날, 위스콘신주 케노샤의 한 대학 술집에서 총격사건으로 3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인 8월23일, 케노샤에서 흑인인 제이콥 블레이크가 백인 경찰관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가지고 있던 총기를 떨어뜨린 직후 경찰에 의해 즉사한 것이다.

이것만 보면 가엾은 흑인이 인종차별에 의해 죽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에 타려던 흑인 블레이크의 등에 총을 쏜 경찰은 피해자가 경찰 지시에 불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의 불문율은 경찰의 지시에 불응하거나 거부하고 자신의 주머니나 자동차에 손을 넣으려는 행동을 하면 총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인들이야 경찰에 불응하거나 거부할 일이 없으니 우리에게 이런 일은 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케노샤에서는 약150명의 방위군이 배치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경찰이 블레이크를 대하는 방식에 불만을 가진 BLM(Black Lives Matter)세력과 총기를 든 자경단 민병대원들이 대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콜로라도에 본부를 둔 총기 권리 단체 NFGR(National Foundation for Gun Rights)는 케노샤에서 ‘경찰의 흑인 남성 총격에 항의하는 시위가 폭도들로 변질됐다’ 라는 취지의 성명서도 발표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8월 25일, 케노샤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참여한 두 남성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방화와 약탈을 동반한 시위대를 상대로 당시 만17세였던 카일 리튼하우스가 저지른 이 사건으로 미국에서 총기의 자유가 다시 큰 화제로 떠올랐다.

리튼하우스는 평소 경찰을 존경해왔던 백인 소년이었다고 한다. 지난주 그는 케노샤 카운티 법원에서 총기 살인 등 다섯 가지 중범죄(felony charges)에서 전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오랜 시간 숙의 끝에 이 사건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에 의한 것이었다며 리튼하우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앞서 브루스 슈뢰더 판사는 리튼하우스에 대한 총기소지 혐의는 기각했었다. 사건 당일 그는 AR-15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케노샤에서 열린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로부터 지인들의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일념으로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특히 아빠 소유의 가게를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들고 리튼하우스가 거리로 나선 곳은 그가 거주하던 일리노이주 앤티오크였다. 그 곳은 케노샤와 불과 15마일 거리밖에 안 된 곳이다.

그때는 경찰 총격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미 폭동과 방화, 약탈로 격화되는 상황이었고, 10대 소년 리튼하우스도 자발적으로 자경단을 자처하며 현장으로 달려 나갔던 것이다.
당시 3명의 시위대에게 총을 쏜 그는 방화와 약탈이 무차별 자행되는 시위현장에서 부당한 약탈로부터 가게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한 민간인들 중 한 명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재판 영상에 의하면 사망한 한 명은 리튼하우스에게 비닐봉지에 싸여있는 물건을 그에게 던진 직후에 총에 맞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사망자는 스케이트보드로 그를 공격하다가 총에 맞았다. 이유 없이 총을 쏜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평결로 미국사회는 또 한 번 술렁거리고 있다. 재판 결과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혹여 이것이 과열될까 케노샤법원 주변에 주 방위군 500여명이 투입돼 있고,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성명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분노와 우려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배심원들의 판결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성난 국민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이번 평결은 총기문화에 대한 미국사회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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