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웨체스터 이야기 - 내 집 앞, 작은 도서관

2021-11-11 (목) 노 려/전 웨체스터 지국장
크게 작게
나무로 만든 새 집 같은 것이 동네 길 녹지대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매일 몇 차례씩이나 오고 가는 길에 조금만 뭐가 바뀌어도 금방 눈에 띄는데, 빨간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가로 세로 두 뼘 정도의 나무 상자가 가느다란 나무 기둥 위에 달려있는 구조물은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한 보름간 타주를 여행하고 온 사이에 우후죽순같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보는 순간 금방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라는 걸 알았다.


몇 년 전, 책을 그 안에 넣어두면 이웃들이 가져가고 갖다 놓기도 하는 작은 도서관 (www.littlefreelibrary.org)에 대해서, 웨체스터 판에 기사화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구글을 하면서 정보를 수집했던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를 바로 우리 집 앞에서 보니까 신기하고 반가웠다.

3년 전 그 당시에 미국 50주에 거의 9만 개의 리틀 라이브러리가 있다고 했었는데, 다시 구글을 해보니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까지 10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별 다른 취미가 없이 그저 책읽기가 취미인 나로서는, 내 이웃 어느 누군가도 책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뿌듯함도 느꼈다.

당장 ‘리틀 프리 라이브’로 달려갔다. 혹시, Dr. Suess 시리즈가 있나 보러 간 것이다. 얼마 전 부터 희귀책이 된 어린이 책이다. 워낙 유명한 동화 작가인 Dr. Suess (보통은 닥터 수스 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발음은 ‘소이스’라고 한다.)의 책이 지난 봄, 내용 중에 인종차별적인 부분이 있어 출판을 금지한다는 뉴스를 읽고 나서, 물론 철저한 인종차별 반대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닥터 소이스가 그림도 그린 귀여운 동화책이 금지된다는 것에,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좀 안타까왔었다.

모든 게 빠른 젊은 뉴요커들은 벌써 이 책이 눈에 띄면 사둔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영어 잘 못하는 부모 대신 동화집을 많이 사줄 때에, 닥터 소이스 책도 몇권 섞였을텐데 남아 있질 않다.

얼마 전 아스펜 여행 중에 들렸던 ‘알뜰 가게(Thrift Shop)’에서 손자손녀를 생각하면서 뒤적여 본 어린이 책 중에 닥터 소이스의 작은 동화책이 있어서 얼른 샀다.

단돈 10센트로. 이 곳에선 닥터 소이스의 책이 귀해질 것이라는 걸 아직 모르나 보다.
어쨌든, 우리 동네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에 닥터 소이스 책은 없었고, 과학, 요리, 소설 등 다양한 종목의 책들이 가즈런히 꽂혀있었다.

버려야 한다고 하면서 잘 버리지를 못하여, 책상 위와 벽의 선반을 넘쳐나, 지하실 이케아 책장 4개에 꽉 꽂혀있는 책 중에서 몇 권 골라 여기다 갖다 놓을 생각을 해본다.


글쎄 요새 누가 책을 읽나. 책 겉표지가 닳도록 북 마크를 끼우며,책 한 권을 읽던 시대는 지나가는 것 같았다.

유튜브 세상 속에서 책을 읽어주는 여자, 책 읽어주는 남자가 길고 긴 스토리를 책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의도, 또는 유명 평론가들의 평가를 곁들여서 몇 십분 만에 똑 부러지게 정리를 해준다. ‘책’ 자체가 희귀 물건이 될 날도 멀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이제 가끔씩, 산책 삼아, 안 읽는 책을 들고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로 걸어가서 흥미로운 책이 보이면 들고 와야겠다. 닥터 소이스의 동화집이 있나도 계속 살펴 보면서.

<노 려/전 웨체스터 지국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