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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고난이 축복이다

2021-11-11 (목)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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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아픔의 시간은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보석이 될 수 있다. 진주는 보드라운 조갯살에 작은 모래알이 들어가 조개가 그 아픔을 이기려고 몸부림칠 때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소향이라는 가수를 좋아한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밝은 하늘이 열리고 한 줄기 기쁨의 빛이 쏟아지는 것 같다. 슬픈 노래조차도 밝고 아름답게 들린다. 그런데 깊은 신앙심을 가진 그녀는 젊은 나이에 암 투병으로 생사를 넘나들 때도 있었고 가장 최고의 노래라는 찬사를 들은 몇몇 곡들은 폐렴의 증상 속에서 불렀다고 한다. 그녀는 수년간 반복적으로 폐렴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는데 자신이 이젠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좋은 가수가 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는 것이다. 그녀가 가수로서의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 갑자기 이런 믿음의 생각이 내면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그래 내가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최고의 가수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노래를 듣고 작은 소망과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최선을 다하여 노래를 부르리라.” 이 생각이 두려움을 내어 쫓았고 마음에 비로소 평강이 찾아왔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간절히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 기대하지 않았던 노래가 수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노래라고 손꼽는 노래가 되어 그녀를 세계적인 톱 가수가 되게 하였다. 그녀는 고백한다. 그때의 아픔과 고통이 노래 속에 녹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들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우리가 당하는 아픔과 고통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통과하게 될 때 진주가 된다. 아파본 사람만이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 그 아픔의 강도가 클수록 그것을 인내로 이기면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 것이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통에는 뜻이 있다. 여러 가지 환란과 시련은 인내라는 보석을 만들어 낸다. 하나님은 이 인내의 과정을 다 겪으면 우리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한 때 간암으로 절망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 때 함께 교회생활을 했던 한 전도사님이 내게 찾아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목사님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까? 저는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어찌 들으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곡해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때 그 말씀이 조금도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고 큰 위로가 되었다. 그 과정을 겪은 후에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한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나같이 실수 많고 미숙한 자가 그래도 30년 간을 목회자로 섬길 수 있게 된 것은 그때 아팠었던 순간을 인내로 이겼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씀을 좋아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2) 인간은 고난을 당해야 죄를 그치고 순결해진다. 정욕을 쫓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다. 너무 인생이 순탄하고 잘 풀려 나간다면 오히려 자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고난과 고통이 없는 인생은 어린아이 철부지 인생일 뿐이다. 고난을 많이 받아 오랜 인내로 그 고난을 이긴 사람은 예수님처럼 이웃을 품을 수 있다. 고난이 유익이요 축복이 되는 것이다. 유난히 고난의 기간이 길고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분이 있다. 그것을 보는 이도 안타깝고 당사자는 더 힘이 든다. 그러나 고난의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과정을 잘 이긴 자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러.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글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 5:10-11)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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