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절망과 희망 사이

2021-11-08 (월) 김부경/수필가·뉴욕 E.노스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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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지금 창밖에선 아주 세찬 설움의 칼날을 세운 듯한 빗줄기가 힘께 세차게 울고 있다.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온 힘을 다해 살고 싶은 한가닥 희망의 줄기 되어 세차게 내마음의 절망을 씻어준다. 아직도 남은 나의 꺼져갔던 희망을 살려본다. 세찬 빗줄기가 대지를 휘몰아치고 있다.

가슴이 뛴다. 대지를 두드리며 제자리를 찾은 빗줄기가 살아있다. 힘이 있다. 나를 일으켜 세운다. 심장을 깨우는 소리다. 생명이 움트는 소망의 소리다. 뚝뚝 후드득 흐른다. 신장 이식을 받은 지 세 달이 되어간다.

2021년 7월20일 화요일 새벽 6시10분 전화벨이 울렸다. “웨일 코넬병원 신장이식 코디네이터다. 너에게 맞는 신장 기증자가 방금 나왔다. 빨리 병원으로 오라”.
집에서 맨하탄 병원까지 5마일 정도다. 2시간 반은 걸릴 것 같다.


기증자는 뇌출혈로 뇌사상태인데 나와 수술시간을 맞춘 후 산소호흡기를 뗀단다. 보험카드와 ID를 챙기고 간단히 머리 빗질을 하고 나갔다. 남편은 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새벽을 깨우며 달려갔다. 차 창밖은 아직도 어둠이 깔렸다.

2015년 초가을, 너무 추웠다. 내입에서 춥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걸음을 걸을 수 없을 만큼 온몸이 부어왔다. 초겨울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정기검진으로 유방암 검사도 했다.

나는 나 자신 건강하다며 늘 수퍼우먼처럼 살았었다. 간절히 기도가 허약해지는 내몸을 타고 흐른다. 결과는 유방암 3기. 전이가 되어 림프암까지 함께 있단다.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6개월간 항암치료를 했다. 항암센터에 가서 선택권이 없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간호사들이 주사바늘에 약을 투여, 한두 시간 몸안으로 천천히 들어와 내 몸안의 나쁜 암들과 싸워주고 있다.

나직히 눈을 감고 조용히 나에게 물어본다. 무엇을 찾아 서성이며 바삐 살아왔을까? 24살에 온 미국 이민생활 33년을… 뜨거운 눈물만이 소리 없이 흐른다. 항암치료 두 번째부터 몸의 털부터 반응을 보인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이 다 빠져버렸다.

항암치료 6개월 뒤에 바로 수술을 했다. 오른쪽 유방의 악성 암세포를 부분 절제하고 오른 쪽 겨드랑이 림프 제거 수술을 했다.
수술후 약 3년간 힘겨운 시간이 되었다. 평소 당뇨, 고혈압 등 만성 질환이 있었다. 합병증으로 왼쪽눈은 거의 실명을 했다.

또 다른 증세로 신장 기능이 망가졌다. 신장 투석생활이 시작되었다.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저녁 6시반부터 밤 10시반까지 4시간동안 투석하는 커다란 기계에 몸을 맡긴다.

나는 없어진다. 나를 잊어버리는 시간들이다. 눈물과 함께 한 6년이 지났다. 그래도 이제는 울지않고 살고싶다. 나는 작고 초라해진 나를 또다시 토닥여본다.

“털어봐, 아프지 않은 사람 있나, 찾아봐, 힘들지 않은 사람 있나. 물어봐, 사연 없는 사람 있나. 들어봐, 삶의 무게 없는 이 있나, 삶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
7월20일, 이제 10분 뒤면 병원에 도착할 것이다. 절실한 감사의 기도가 나를 감싼다. 암수술 후 5년 뒤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만 신장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대기자 명단에 오른 지 1년이 되어간다. 드디어 기다림의 끝이 왔다. 새벽을 깨우며 나를 깨운다.

<김부경/수필가·뉴욕 E.노스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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