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미국 속 ‘한복의 날’

2021-10-2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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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옷 한복(韓服) 입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을 방문하면 인사동이나 남대문 시장에서 한복을 사거나 공항에서 바로 한복을 파는 사찰로 달려간 적도 있다. 아이들이, 또 손자손녀가 커가면서 한국 가족들이 보내주는 한복은 새해 첫날, 추석, 돌잔치, 결혼식, 차례와 기일에 요긴하게 입혀지곤 했다.

한복은 우선 몸매와 상관없이 편하게 입혀지며 새하얀 동정이 달린 깃, 고름을 여밀 때면 기분이 단정해지고 치마저고리의 넉넉한 품은 여백의 미를 즐긴 조상의 여유와 멋을 느낄 수 있다.

10여년 전에는 한복 짓는 법을 배우러 수개월간 토요 개인교습을 받기도 했다. 퀸즈에서 맨하탄을 오가는 전철 안에서 초록색 물모시 천에 한 땀 한땀 바느질을 하다보면 주위 타인종들이 숨을 죽이고 쳐다보았다. 아무리 복잡한 일에 처해있더라도 바늘을 잡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졌었다.


그런데 이 한복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세계인에게 홍보하는 일을 한국 정부 공무원들 보다 앞장서 뉴저지의 한인고등학생들이 멋지게 해냈다. 10월21일 뉴저지 테너플라이 하일러 팍에서 ‘ 한복의 날 ( Korean Hanbok Day)’ 기념식이 열렸다. 이미 지난 4월에 테너 플라이시는 10월21일을 한복의 날로 지정하는 선포문을 발표한 바 있다.

해외에서 한 국가의 지방 정부가 한복의 날을 지정하고 기념식을 개최한 것은 테너 플라이 시가 처음이다. 이 날 테너플라이 마크 진너 시장 부부의 전통혼례식과 한복 패션쇼, 다채로운 한국문화 공연은 한인 이민자들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행사의 주관은 미동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미차세대협의회(Asian American Youth Council, AAYC), 자랑스런 우리 2세들이다. 협의회가 창시된 것은 2017년 뉴저지 최고명문고에서 한 교사가 수업 중 ‘나는 한국인을 싫어한다’는 인종차별 발언을 한 것이 동기다. 학교측은 이 사실을 덮어버리고자 했으나 한인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1,500여명의 서명을 받아냈고 결국 그 교사는 해임되었다.

브라이언 전 회장(올 가을 대학생이 되었다)은 중국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 주장하고 중국 드라마에서 한복을 입는 등 우리 것을 자기네 것으로 둔갑시키려 하자 회원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복의 날’을 선포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그래서 뉴저지 테너플라이 시장에게 한복의 날 제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고 동의를 받아낸 것이다. 이에 뉴저지 주의회도 한복의 날 선포에 축하의 뜻을 전해왔다.
한국은 1897년 병자수호조약 이전에는 양반이나 하층민 모두 한복을 입었다.

이후 한복과 양복이 혼용되다가 1970년대 한복 입는 사람이 드물어졌고 1990년대에 생활한복이 나오면서 다시 한복을 찾게 되었다. 이에 한국정부는 1996년 10월21일 처음으로 ‘한복의 날’을 선포했다, 그래서 뉴저지의 ‘한복의 날’도 10월21일이 되었다.

영어권 젊은 세대가 모인 단체의 이런 활동은 한인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차세대 리더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회원들은 유권자 권리인 선거참여 운동 등을 통해 한인 정치력 신장에 힘쓰고 있으며 아시안 혐오범죄 문제 해결 등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는 11월2일은 본선거이다. 뉴저지는 역대 가장 많은 27명의 한인후보가 출마했다. 하원의원부터 각 타운별 시의원과 교육위원 등이 선출된다. 뉴욕시에서도 시장, 공익옹호관, 시감사원장, 보로장, 시의원을 선출하며 이 역시 한인 후보 다수가 출마했다.

이번에 한복의 날 선포가 이뤄진 것은 정치인들이 높아진 한인들의 힘과 위상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번 본 선거에 유권자라면 누구나 참여하자. 그래야 테너 플라이, 클로스터 뿐 아니라 수많은 도시들이 한복의 날을 선포하고 기념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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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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