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 아기 사슴과 스티브의 추억

2021-10-15 (금) 주동천/노스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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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나 다니는 저수지가 있는 숲 네거리에 아기사슴 그림이 있는 노란 팻말이 나붙었다. 자세히 보니 아기사슴이 “천천히 가 주세요 우리 엄마가 여기를 지나 다녀요”라고 쓰여 있었다. 문득 몇 년 전 일이 생각났다.

스티브는 4년 전 쯤 한국인 아내를 잃고 아내와 다니던 우리 교회를 혼자 나오는 독일계 미국인이었다. 젊어서 소셜워커로 일을 했던 그는 메츠 팬이었고 나와 아내는 양키 팬이어서 우리는 언제나 야구 얘기와 지난 한 주 동안 얘기를 나누던 좋은 친구였다.

초여름쯤 되었을까, 그 날도 야구와 전 주일에 있었던 아기 사슴 얘기를 들려주었다. 엄마와 아기로 보이는 두 마리의 사슴이 바로 이 숲 근처에서 내가 다니던 도로를 가로질러 가다가 내 차를 보고는 황급히 저수지가 있는 아래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곳에는 어른 가슴높이의 펜스가 높이 둘러 처져 있었는데 어미는 가볍게 훌쩍 넘어갔지만 아기사슴에겐 어림도 없이 높아 그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건너편 엄마만 쳐다볼 뿐 둘은 서로 마주보며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뒷차들을 보내고 차를 세운 뒤 그들을 도우려고 뛰어 가니 아기 사슴은 자기를 잡으러 오는 줄 알고 펜스를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른 잡아들어 넘겨야겠다 싶어 아기 사슴의 배를 움켜잡는 순간 화들짝 놀란 사슴이 온 몸을 뒤틀더니 순식간에 펜스의 그 손바닥 반만한 틈을 빠져 나가는게 아닌가. 그러더니 곧바로 어미 사슴에게로 달려갔다.

잠깐 사이에 자기 품으로 돌아온 새끼를 본 어미 사슴은 그 자리에 선 채 잠시 나를 바라보며 움직이지를 않았다. 마치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하는 눈빛이었다. 가슴을 졸이며 듣고 있던 스티브가 “You are a good man “하면서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소셜 워커로 평생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 왔던 그가 그렇게 기뻐하며 좋아하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코로나로 더이상 교회에서 만날 수 없어 몇 주가 지난 어느 일요일 우연히 전화한 날이 마침 그의 생일이어서 우리는 오랜만에 우리들의 젊은 날 이야기며 많은 옛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그것이 나와 스티브의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2020년 6월 스티브는 아무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남기지 못한 채 그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

가을바람 불고 여름은 갔다. 그리고 스티브도 갔다. 그러나 스티브는 내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좋은 친구로 그리고 그리운 친구로 언제까지나 나의 가슴 속에 깊이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

<주동천/노스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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