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징어 게임’이 뭐길래

2021-10-0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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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 오징어 게임 ’이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핼로윈 데이 의상으로 오징어 게임 초록색 운동복과 경비복 주황색 점프수트가 검정색 가면과 함께 인기가 좋다고 한다.

게임 참여자는 사채 쓰며 도박하다가 사채업자에게 쫒기는 이, 투자를 잘못하여 채권자에 시달리는 이, 북에 남은 어머니를 만나고자 돈이 필요한 탈북자 소매치기, 조직의 자금을 도박으로 탕진하고 쫒기는 조폭 등등 각자의 사연이 구구절절하다.

현실에서 아무 것도 할 수도, 할 것도 없는 이들의 마지막 하나 남은 희망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6개 게임의 승자가 되어 456억원 상금을 따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한명 씩 피범벅이 되어 죽어나갈 때마다 받아야 할 상금은 1억씩 올라간다.


‘오징어 게임’ 에 나오는 딱지치기, 구슬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게임들은 우리 모두에게 낯익다. 오징어 게임은 땅바닥에 오징어 몸통 모양의 그림을 그린 뒤 그 안에서 공격자와 수비자가 서로를 넘어뜨리는 몸싸움을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딱지치기를 친구들과 해가 으스름 질 때까지 하다보면 엄마가 밥 먹으라고 찾으러 나왔고 술래가 등 돌려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소리를 치는 동안 기를 쓰고 앞으로 달려갔었다. ‘다' 가 끝나기 직전 갑자기 멈춰서며 몸이 흔들릴까봐 가슴이 두근거리던 기억이 난다.

꼬마 서넛이 쪼르르 모여앉아 또뽑기 아저씨가 만드는 달고나 구경도 재미난 놀이 중 하나였다. 연탄불 위에서 달궈진 국자 안 설탕이 갈색이 되면 소다를 넣어 빵 부풀어 오르는 것이 신기했다. 편평한 판위에서 눌러져 완성된 달고나의 세모나 별 모양 문양을 침 발라가며 오려내었었다. 이같은 동심 가득한 놀이를 떠올리면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던 것이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을 보고 난 후, 웃을 수가 없다.

이 잔혹한 게임이 돈이 너무 많아 재미가 없는, 뭘 해도 재미가 없는 극상류층들의 게임이란다. 이들은 몸을 감춘 채 눈앞의 경쟁 상대를 이기는데 사력을 다하는 참가자들의 이전투구를 보고 재미를 느끼고 있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게임의 승자가 된 성기훈(이정재 분)은 “사람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고 절규하는데, 도대체 이 오징어 게임이 뭐길래 전 세계인들이 열광할까?

황동혁 감독은 서바이벌 추억 놀이를 통해 무한경쟁사회와 생존 앞에 잔혹과 폭력이 난무하며 인간성을 잃은 사람들을 묘사했다고 한다.

지금, 코로나 19이후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졌다. 심화된 양극화, 그에 대한 불만과 경쟁 체제 속에 인간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자본주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푹 빠져들었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 깊숙이 도사린 욕망과 욕심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점이 세계인의 공감을 샀다는 것이다.

수천, 수만 명이 오징어 게임에 목숨 걸고 받으려는 상금은 456억원. 그런데 요즘 경기도 판교 대장동 개발 부동산 관련금액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퇴직금 50억, 뇌물 100억은 보통이고 민간업자 이익으로 3,000억, 4,000억, 5,000억 등의 숫자가 난무하고 있다.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불공정한 것은 아닌가, 더 공포스럽고 탐욕스러운 것은 아닌가. 몰인정하고 극단적인 내용일수록 시청률이 더 높게 나올 것이라는 예측은 겁이 난다.

다음 게임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우리도 내일은커녕 코앞에 닥칠 미래도 모른다. 죽음을 앞둔 이 게임의 설계자가 성기훈에게 ‘아직도 사람을 믿나? 그 일을 겪고도.“ 하고 묻는데, 주인공 대신 대답한다. “ 당하고 이지러졌어도 그래도 믿을 건 사람이지. 그래야 살지. 아무 것도 믿지 않으면 무슨 힘,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지? .”
수백, 수천억은 신기루 같은 것. 내 손 안의 일억이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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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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