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웨체스터 이야기 - 마리오 쿠오모 다리 아래로 허드슨 강은 흐르고

2021-08-19 (목) 노려 /웨체스터 전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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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쿠오모(Mario M. Cuomo) 브릿지를 시원하게 달린다. 뉴욕에 약 180개의 크고 작은 다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새로 만들어진 다리가 2017년에 완공된 ‘마리오 쿠오모’ 다리이다. 모든 것이 최신식일테니 멋지게 달리는 게 당연하다.

이 다리로 허드슨 강을 건널 때엔 한 쪽으로 저 멀리 웨스트 포인트가 있는 베어 마운틴(Bear Mountain)의 자락을, 그리고 또 한 쪽으로는 아련하지만 뚜렷이 솟아있는 맨하탄 건물 숲을 바라보며 느긋하다. 4차선의 넓은 다리 위를, 운전을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무심히 달리곤 했다.

그런데 요새, 뉴욕 주에서 가장 길다는 3마일이 좀 넘는 쿠오모 브릿지를 건너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름 말이다. 왜 멀쩡하게 잘 있던 다리를 ‘마리오 쿠오모’라고 했냐는 거다.


한 뉴스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 군인들이 탈레반을 피해, ‘우정(Friendship)’’이라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 우즈베키스탄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32년 전에는 바로 이 다리로 패배한 소련군인들이 우즈베키스탄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공포와 혼란의 현장에 다리 이름이 ‘우정’이라서 뭐가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승자 패자가 뒤바뀌는 역사가 나란히 한 눈에 보인다.

‘마리오 쿠오모 브릿지’도 원래 좋은 이름을 갖고 있었다. 한 인간을 높이거나 숭고한 뜻을 담지 않은 그저 평범한 ‘타판 지(Tappan Zee)’이다. 허드슨 강을 끼고 살던 아메리칸 인디언 동네 이름인 ‘타판(Tappan)’에다 네덜란드 어로 바다라는 뜻의 ‘지(Zee)’를 붙인 것이다.

왠지 귀여운 침팬지가 생각나면서, 발음도 예쁘고 세련된 맛도 풍기는 ‘타판지’라는 이름이 마음에 새겨져 있는 건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다리 이름을 바꾼다고 했을 때, 뉴스에 크게 오르진 않았지만, 이 지역 많은 주민들이 반대를 했었다.

그러다가 10여년 전, 한인들에게 관심이 갈 웨체스터 지역의 뉴스를 쓰기 시작하면서는 ‘타판 지 브릿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낡아서 사고가 날 위험이 많아서, 보수공사를 할 것이냐 새로 만들 것이냐 왈가왈부 하는 뉴스가 계속해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한국 전쟁 당시인 1950년에 계획하여 충분한 예산 없이 공사를 해서 1955년 완공할 때에 어차피 다리의 수명이 짧을 것을 예상했었다고 한다. ‘타판지 브릿지’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매일 “제발 오늘 이 다리가 부숴지지 않기를…” 기도 했다던가. 우여곡절 끝에, 나즈막하게 둥글게 휘어져 강에 나즈막이 놓여있던 낡은 타판지를 무너뜨리고 높다랗게 쭉 뻗은 멋쟁이 새 타판지가 만들어졌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어느 날, 이제는 도중하차한 주지사 앤드류 쿠오모(Andrew Cuomo)가, 이 다리 이름을, 3선 뉴욕 주지사였던 자기 아버지 이름으로 바꿔 버렸다. 아들은 개통식에 1955년형 세보레 코르베트(Chevrolet Corvette) 스포츠카로 다리를 질주하여 아버지 이름을 빛내준 것인데, 지금 아들은 아버지 이름에 무슨 칠을 한 것일까. 아들 앤드류가 아버지보다 더 커지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는 건 다 알려진 비밀이며, 정작 마리오 쿠오모 씨는, 40년간이나 영화 ‘갓 파더’도 보지 않을 정도로 ‘이탈리안 패밀리 비즈니스’를 배제해왔다고 하는데 말이다.

아버지 쿠오모 다리를 건널 때마다 여성을 얕잡아 본 아들 쿠오모를 번번이 생각해야 하나 아니다. 아폴리네르의 시를 빌려보자.
쿠오모 다리 아래 허드슨 강은 흐르고 / 우리의 역사도 흘러내린다.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 저렇게 천천히 흐르는 동안 /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 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 / 친구여,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그렇다. 강 건너편 언덕을 바라보며 ‘저 집에서는 강 경치가 장관이겠다’ 생각하며, 매끈하게 솟아오른 쿠오모 다리를 느긋하게 건너야겠다.

<노려 /웨체스터 전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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