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자유의 여신상과 페인의 ‘상식’

2021-07-0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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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리버티 섬에 설치된 ‘자유의 여신상’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다. 무게 225톤, 동상 발끝에서 횃불까지 46.1미터, 지면에서 횃불까지 93.6미터, 왼손에 독립선언서, 오른손에 횃불을 높이 치켜든 이 조각상은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만들었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6년 선물했었다.

그런데 이 자유의 여신상 미니 조각상을 앞으로 10년간 뉴욕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바르톨리가 2.83미터 높이로 복제한 미니 조각상은 파리국립기술공예박물관 앞에 전시되었는데 올해 미 독립 247년을 기념하여 미국에 대여되었다. 프랑스 르아브르 항구를 출발해 대서양을 횡단, 동부 볼티모어 항구에 도착 한 후 리버티 섬 옆의 엘리스 섬에 7월4일부터 전시된다.

미국과 프랑스의 우정을 보여줄 이 여신상 소식을 들으며 프랑스는 어떻게 미국의 독립을 지원하게 되었을까가 궁금해진다. 물론 첫 번째 이유는 자국의 미국진출을 위해서이다.


영국은 1607년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을 시작으로 동부 해안가와 북쪽 해안가에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프랑스는 퀘벡주를 중심으로 서쪽 내륙으로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역사적으로도 오랜 앙숙 관계인 프랑스와 영국은 1755~1764년 프렌치 인디언 전쟁을 벌인다. 전쟁에 진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에서의 군사적 정치적 권한을 영국에 박탈당한다.

전쟁에서 이긴 영국도 재정에 타격을 입고 식민지 주민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다가 1773년 12월16일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한다. 프랑스는 북미의 모든 것을 잃자 영국을 전략적으로 약화시키고 싶었다. 독립군을 지원하기 위해 화약과 무기, 군함 등 경제적 원조뿐 아니라 군인까지 파병했다. 미국·프랑스 연합군은 요크타운 요새에 주둔하던 영국군에게 항복을 받아낸다. 영국 정부는 1783년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는 파리 조약을 맺는다.

그런데 1775년부터 1783년까지 8년간 진행된 대영제국과 13개 식민지 사이의 전쟁, 민병대로 시작된 신생 식민지군이 어떻게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자랑하던 영국을 이겼을까? 당시 대부분의 식민지인들이 ‘자애로운 영국왕의 신민’ 이라 자처하며 대영제국의 호위아래 정치적 가치와 경제적 번영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의 ‘상식’ (Common Sense)’. 이 한 권의 책을 주목해야 한다. 미 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페인의 펜이 없었다면 조지 워싱턴의 칼은 쓸모없었을 것이다’고 한 것처럼 1775년만 해도 대다수 미국인들은 독립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1776년 1월10일 출간된 46쪽에 불과한 이 소책자가 여론을 하나로 만들고 미국 독립운동에 불을 질렀다. “ 내가 발을 들여놓은 내 나라가 바로 내 눈앞에서 불에 탄 지금, 떨쳐 일어날 시간이다. 모두가 떨쳐 일어나야 할 때다.”며 완전한 자주 독립과 공화제에 입각한 새나라 건설을 촉구했다.

농부들도 알기 쉽게 간단명료하게 써진 “미국이라는 대국이 조그만 섬나라인 영국 왕실의 학정을 끊고 속국에서 벗어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다”는 문장이 답답한 식민지인의 가슴을 펑 뚫리게 했다.

만일 누군가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미국‘, ”통일이 되어야 하는 한반도’를 짧고 간결하게, 진솔한 마음으로 쓴 책이 페인의 ‘상식’ 같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자. 인종화합의 나라 미국, 통일된 코리아가 역사를 바꾸고 전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꿀 것이다.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육사는 시 ‘광야’에서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고 했다. 시인은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총으로 싸우지 못하자 펜으로 싸우는 길을 택해 어떤 좌절 속에서도 조국 광복을 염원했다. 우리에게 백마 타고 올 초인은 과연 있을까?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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