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그리며
2021-06-18 (금)
한범성/ 스태튼 아일랜드
아버지는 자식들 뒷바라지 하러 이민길 먼저 오르신 어머니를 홀로 오랜 세월을 그리며 다 큰 아들놈 퇴근하면 먹이려고 손수 열무김치를 담그셨다. 돌아 서신 등에 나, 너무 외로워 씌어있었다.
넘어지셔서 삔 손목이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뼈가 솟은 어머니에게 힘들게 일하고 왔으니 국수 말아달라고 졸랐더니 아픈 손 감추며 부엌턱에 기대어 만들어 주셨다. 돌아서신 등에 나, 많이 아파 씌어있었다.
수없는 고난과 고통의 세월에 내장 다 빼버리고 얼었다 녹았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평생의 삶의 값은 얼마였을까. 그 희생의 덕장을 얼마나 수없이 빠져 나오고 싶으셨을까. 나는 왜 아무런 미안함도, 죄책감도 없이 대들기만 했었을까. 자식이란 게 특권이었을까.
어느덧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도 되었다. 나도 내 아버지의 모습처럼 나의 아이들에게 희생과 사랑의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새벽녘, 남이 깰까 봐 조심스레 펼치는 성경책과 웅크리고 조아리는 기도소리가 그립다. 이제는 눈물 안에서만 두 분을 만나뵐 수 있다.
아버지의 날을 맞아 시인 전길자의 시 ‘생애’를 떠올린다.
‘길게 이어진 몇 겹의 고통이/덕장에 걸려있다/내장 다 빼버리고 얼었다 녹아내리기를 반복하지 않고서는/제 값을 받을 수 없다/살얼음 품어야만 제 맛을 내는/빳빳하게 긴장한 삶이어야 깊은 맛 우려내는 생애/한번쯤 덕장을 빠져나가/겨울바람 피하고 싶었을까/한 번쯤 사랑에 녹아/허물어지고 싶었을까/하얗게 쏟아지는 눈발 끌어안고/곧추서서 기다리는/먼 날/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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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성/ 스태튼 아일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