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 칼럼- ‘인지 부조화 이론’

2021-06-14 (월) 김창만/목사·AG 뉴욕 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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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판자에 꽂은 못을 돌리는 단순하고 지루한 작업에 두 사람이 참여했다. 작업 후 첫째 참여자는 10달러를 지급 받았고, 두 번째 참여자는 200달러를 지급받았다. 주인은 두 사람의 만족도를 측정했다.

10달러를 받은 참여자는 일치하지 않는 두 가지 가치관의 혼란으로 우왕좌왕 하였다. 반면 200달러를 받은 참여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200달러의 보상에 대하여 충분한 만족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 하므로 파생하는 심리적 혼란을 모면하기 위하여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정신활동을 인지 부조화 이론(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이라고 한다.”(레온 페스팅거의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중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람은 누구나 인지 부조화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나 믿음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터무니없는 이유나 말을 나열하면서 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누구에게나 흔히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대형 종합병원에서 저명한 의사의 진료를 기다리던 환자가 주변의 유언비어만 믿고 고액을 주고 엉터리 약을 구입한 후의 태도를 보라. 그 환자는 자신이 속았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끈질기게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만족해한다. 어처구니없는 고가(高價)상술에 넘어간 후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자기 합리화를 주장하는 것이 똑같이 닮았다. 둘 다 인지 부조화 현상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한 번은 ‘러스키 비에스트니크’ 출판사로부터 거금 4,500루블의 선금을 받고 작품을 쓴 적이 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큰 돈을 손에 쥐었으니 도스토예프스키는 흡족했다. 이제 글만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두문불출하고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어 작품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는 쓰던 원고를 몽땅 쓰레기통에 집어 버리고 출판사에 편지를 썼다. “글 빚을 지는 작가가 더 이상 되고 싶지 않습니다. 미리 대가를 받고 하는 집필은 나의 창의성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나 자신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솔직하게 인정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인지 부조화의 모순에 빠지지 않는 위대한 작가였다.

<김창만/목사·AG 뉴욕 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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