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선물

2021-06-14 (월) 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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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은 나물은 물론, 찌게나 국 끓일 때 넣으면 시원한 맛이 있어 큰봉지를 사온다. 콩나물 다듬고 씻는 일이야 쉽지만 마지막 남은 콩대가리 처리는 간단치않다. 콩나물 씻어 건진 후 남은 콩대가리 추리느라 시간 보내는 나를 보고 ‘버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또 다른 내가 하는 소리에 매번 갈등했었다.

늘 나는 그 콩대가리 마지막 하나까지 다 줏어올린다. 그냥 그 일에 오롯히 집중한다. 아무생각이 끼어들지 않는다. “언니 나 어제까지 골프치고 즐겁게 보냈어” 새벽1시에 걸려온 전화.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떨리고 있었고 눈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고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OO암이래. 그리고 상태가 심각하대. 언니한테 얘기해야 할 것 같아 밤늦게 전화했어”라며 오늘 병원에서 받은 진단 결과에 충격 받아 울고있었다.


암 완치 치료가 많은 요즈음이다. 의술의 발전이 어떻고 등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았을지라도 얘기를 해야 하는 나. 너무 걱정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아야 한다. 너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들에게 잘 해보자고 다독여야 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잖아. 함께 힘내자는 얘기에 “언니, 불안함이 많이 가셨어. 내일 의사 만나고 소식 줄께” 라며 전화를 끊었다.

30여년 전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떠오른다. 갑자기 ‘사람이 선물이다’ 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가슴에 스몄다. 언제나 받으면 고맙고 즐거운 선물같은 존재였던 그녀. 나보다 더 나를 생각해 줬던 그녀! 그러한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절실한 기도뿐. 그녀를 위한 지극한 마음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녀 이름을 되뇌이며 집중한다. 격식도 없다. 그냥 숨쉬듯 그녀를 생각한다. 콩나물 콩대가리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주워 올리는 것도 집중의 힘으로 환희로운 경지에서 가능하다는 것 깨닫고 경이로움에 미소짓는다. 조용하고 적적한 그 깊은 기도의 집중 속에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나쳤던 소중한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어제까지 즐겁게 보냈는데- 그 즐거움의 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없던 삶이었다면 그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일까?. 갑자기 닥친 병마로 인해 인생의 깊이를, 진정한 의미의 삶을 되물어 보는 기회는 특이한 의미의 축복일 수도 있다는 것 알았다. 즐거움 놓치는 것이 불행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살아간다면 가 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영역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수두룩하게 받은 선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값비싼 보석보다 더 값진 사람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잠시 마음에 깃든 혼란스러움 내려놓고 본다면 맑은 물밑이 바로보이듯 보이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뭔가 계획하며 성취 방법 찾아 헤맬 때가 많다.

소중한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슬픔. 잃음을 피할 수 있는 어떠한 비법도 없다. 그것이 슬프고 안타깝다라는 생각에 주저앉아 버린다면 우주적이고 진리적 생의 근본에 접근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의 진실한 민낯을 바로 보는 마음 두렵고 떨리지만, 깊게 사유하므로 생.노.병.사.의 테두리 부수고 허공을 향해 큰소리로 웃을 수 있다면, 죽음 껴안고도 영원히 사는 행복함이다. 기도는 뭔가 좋은 결과 이루기 위한 과정이 아님을 깨닫는다.

진정한 기도는 매순간 깨어있어 현재 집중하는 마음에 담겨지는 귀한 선물이다. 그 고마운 선물 알아 차리는 일이다.

<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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