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성당과 뽕짝 트로트

2021-06-11 (금) 조민현/신부·팰팍 마이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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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성당 안에서 미사하고 기도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도 내입에서 뽕짝 트로트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내가 뭘 그렇게 흥얼거리고 돌아다니는지 의아해하는 신자들이 내가 뽕짝 트로트 노래를 흥얼거리고 돌아다니는걸 알고 아주 재미있어 한다.

왜 거룩한 성당 안에서 가톨릭 성가가 아니라 뽕짝 트로트를 흥얼 거리냐고 의아해 한다. 나도 마침 도둑질하다 걸린 것처럼 깜짝놀라 계면쩍은 듯 그냥 자리를 피해버린다.

몇 해 전 아버지가 아프셔서 갑작스럽게 한국에 들린 적이 있다. 오랜만에 한국을 가니 만나야 할 친구들도 제법 있어 아프신 아버지에게 인사만 꾸뻑하고 바쁘게 돌아 다녔다. 참 그것도 지금 돌이켜보니 불효를 했다.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청계천을 다 뒤집어 놓았다고 해서 그 것도 볼 겸 청계천 일가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온갖 물건을 갖다 놓고 파는 장사하는 이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그런데 그중에도 유독 리어카에 잔뜩 노래 테이프와 CD를 걸어 놓고 신나게 트로트 뽕짝이 들려오는 것이 내 귀와 눈을 자극한다. 내 발길을 잡는다.


뱃속까지 후련하게 내 가슴을 꼭 사로잡는 트로트 뽕짝 노래들이 크게 들려온다. 그렇게 그 뽕짝 노래가 신나게 터져 나오는 리어카 옆을 쉽게 내가 지나치지 못하고 멈춰 섰다. 그 리어카 옆에 멍하니 서서 유행가 노래를 들으며 발을 못 띄고 있는데 듣는 가사 구절구절마다 귀에 쏙쏙 들어 온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참 맞는 소리이다. 야, 이것은 진짜 예술이다. 진짜 맞는 말이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사랑이라고 영화, 노래, 소설에서 사방에서 떠들지만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인생을 살아보고 자기에게 솔직한 이라면 누구나 안다.

또 ‘ 네 박자’ 라는 노래,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참! 맞다. 연극 같은 인생사인데 사소한 것 별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죽어라 들이대고 싸우고 살아온 거 같아 너무 마음이 저미어 온다.

이렇게 노래 구절구절마다 참 진실과 진리가 담겨있다. 집에 돌아 와서 그 이야기를 어머니께 드리니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유행가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걸 보면 벌써 나도 나이가 먹은 증거다 하신다.

그런데 나이도 먹긴 했지만 이제 시장 바닥의 유행가 가사마저, 길거리 노점상이 파는 뽕짝 트로트가 가슴에 쏘오쏙 다가오고, 인생의 지혜로, 성서의 하느님 복음처럼 들리니 나도 이제 도가 통했나 보다.

하느님 말씀이 교회뿐이 아니라 시장바닥에서도 내 귀에 들려오니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말싸움처럼 돼지 눈에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인다니, 시장바닥에서 들리는 노래 소리에 마음이 맑아지고 깨달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정화되니 이 어찌 큰 은총이 아니겠는가? 하느님은 어디에든 모든 곳에 다 현존하신다.

야! 나 이제 득도했구나! 드디어 깨달았구나! 명동성당에서가 아니라 청계천 시장바닥에서, 감실앞 성체불이 아니라 물건을 팔고 사는 시장 한복판의 왁자지껄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이 들리고 마음이 맑아지고 정화되는 구나! 사실 내가 가는 곳마다 하느님 나라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성인 성녀가 아닐까? 내가 예수 마음만 갖고 있으면….

욕심쟁이 자기밖에 모르고 날뛰는 세상에서 서로 치고 박고 뒤에서 남의 등에서 칼 꽂는 세상에서도 예수 맘을 갖고 듣고, 보고, 사람을 만나면 모든 이가 선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나는 ‘사랑은 아무나 하냐’ , ‘네 박자’ 뽕짝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성당 안을 헤지고 다닌다. 사랑이 아무나 하는지 아냐!!

<조민현/신부·팰팍 마이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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