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장보기가 겁난다

2021-05-2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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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ABC방송은 뉴욕 아시안 빈곤실태를 집중조명하면서 뉴욕시에서 아시안 5명 중 1명이 빈곤에 허덕일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 예로 살기 위해 매일 카지노행 버스를 탄다는 한인 전모씨의 이야기를 실었다. (본보 5월11일자 1면)

그가 플러싱에서 편도 2시간 걸리는 펜실베니아의 샌즈 카지노로 향하는 버스에 매일 몸을 싣는 것은 게임을 하려고 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버스를 타면 카지노측에서 제공하는 45달러가 들어있는 현금 카드 때문이다.

그는 이 45달러 카드를 카지노 갬블러에게 38달러에 팔고 난 후 카지노 버스비 왕복 20달러를 주고나면 남은 18달러로 하루를 산다. 문제는 이런 저소득층이나 노숙자 아시안들이 일일 평균 300~400명이라는 것.


2012년 샌즈 카지노가 생기기 전에는 플러싱에서 버스로 세 시간 거리인 아틀랜틱 시티를 오가는 메가 버스를 10~20년간 이용하는 한인들이 제법 있었다. 이 버스를 타면 역시 25~35달러 현금카드를 주었다.

왕복 버스비를 제하고 몇 푼 남은 돈으로 햄버거를 사 먹으며 하루 세 끼를 해결하거나 며칠간 돈을 모아 슬롯머신과 비디오 게임을 하던 이들, 세월을 죽이는 이 삶을 ‘버스살이’ 라고도 했다. 뉴욕 한인이민사에 도박으로 패가망신하거나 아틀랜틱 시티 카지노에 블랙리스트로 이름이 오른 한인 이야기는 적잖다.

코로나 팬더믹 속에서 연방정부는 경기부양금으로 수여자격이 되는 사람들에게 지난해 3월 1,200달러, 12월 600달러에 이어 올해 1,400달러씩 주었다. 이것으로 목구멍에 풀칠은 했다. 연방실업수당은 작년에 1차로 주당 600달러, 2차로 300달러, 올해 3차로 300달러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동안 생활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9월6일까지만 지급된다. 실업수당이 끊어지면 이후 다들 생활대책이 없다고 한다.

퓨리서치 센터의 최근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민 10명 중 4명이 1년째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인종별로 보면 아시아계는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빈곤층을 겨우 벗어나 중산층 끄트머리인 한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생활비가 많이 늘어났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작년 봄, 코로나 초창기에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수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배송이 원활하지 않으니 공급이 달려 식품비 가격이 올랐었다. 이어서 델리나 마켓 종업원이나 딜리버리 맨 등의 위험수당을 소비자가 일부 부담했다. 코로나 등 긴급재해로 인한 식품료 인상에 이어 식당 및 육류가공업체의 코로나 19 방역비용에도 소비자들의 일부 부담이 들어갔다.

최근, 연방노동부의 물가지표가 지난 2012년 8월 이후 9년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했다고 발표했지만 우리는 이미 그 전에 느끼고 있었다.

31일은 메모리얼 데이다. 앞집, 옆집 모두가 바비큐 그릴에서 갈비 굽는 냄새를 피우는데 아이들이 잘 먹는 갈비 바비큐를 하긴 해야겠는데 고기, 해산물, 야채 값이 부담스럽다는 이들이 있다. 앞으로 경제 활동이 늘어나도 한번 오른 식품비가 다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민 초창기에는 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이면 아침에 교회에 가고 오후에는 근처 공원이나 팍에서 바비큐를 해먹었다. 절단기로 쓱쓱 잘라서 갈비에 양념을 하거나 바로 구워먹는 갈비가 한국에 들어가면서 ‘ LA갈비’ 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그야 이 지역에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니까.

뉴욕사람들도 잘 먹는 이 LA갈비 값이 만만찮다. 육류 가격이 오르고 보니 품질도 떨어진다. 흐르는 물에 뼛가루를 씻어내고 양념을 하기위해 고기를 손질하다보면 3분의 1이 허연 기름이다. 아무리 기름이 많고 부드러운 부위가 LA갈비라고 하나 기름덩어리를 먹을 수는 없다.

코로나 팬데믹 막바지, 여전히 물가는 높고 장보기가 겁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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