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이름없는 전사들

2021-05-14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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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라스트 킹덤( THE LAST KINGDOM) ’을 보았다. 2015년 시즌1이 시작되어 4월에 시즌 4가 끝난 영국의 탄생 역사를 그린 판타지 사극이다. 웨식스(Wessex) 왕국 알프레드와 노섬브리아 왕국 베번버그 영주의 아들 우트레드가 주인공이다.

알프레드는 7개의 왕국-웨식스, 서식스, 에식스는 색슨족, 머시아, 노섬브리아, 동앵글리아는 앵글족-으로 분열된 것을 통합하여 오늘날 잉글랜드를 만든 자로 890년 ‘잉글랜드의 군주’ 란 칭호를 사용하였다. 역대 영국 왕들 중 유일하게 대왕으로 불린다. 우트레드는 데인족에게 아버지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 데인족으로 자랐으며 알프레드의 용맹한 전사로서 전쟁마다 이긴다.

알프레드(데이비드 도슨 분)와 우트레드(알렉산더 드레이몬 분)는 기독교와 이교도의 견해 차이로 싸우고 화해하고 반목하고 다시 화해하는 와중에 전쟁을 치러 영토를 넓혀나간다. 날로 힘이 커지는 우트레드에게 불안감을 느낀 왕은 그를 멀리 내치기도 한다. 죽음을 앞두고 화해하면서 한마디 말로 우트레드 마음의 앙금을 풀어버린다.


“ 비록 너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겠지만 네가 있었기에 내가 왕으로 남았다. ”
왕권강화와 종교적 파워를 지닌 알프레드는 고대영어 표준화를 시도하고 자서전을 비롯 문헌을 남겨 기록문화를 정착시켰다. 이 드라마에서 알프레드는 실존인물이나 우트레드는 허구의 인물로 역사소설가 버나드 콘웰의 ‘ The Saxons Stories ‘를 원작으로 했다.

역사에는 수많은 전투에서 피를 흘린 전사(戰士)들의 이름은 없다. 모든 것이 왕의 업적으로 남는다. 또한 역사에는 분열된 나라가 하루아침에 통일이 되지 않는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나라도 그렇다. 춘추전국시대의 국가 중 하나인 조그만 나라 진은 상앙이 행한 법가에 따른 개혁이 바탕이 되어 기원전 221년에 진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했다.

법가 상앙은 20여년간 제25대 군주 진효공의 강력한 신임으로 변법을 시행, 멸망 직전의 나라를 부국으로 만들지만 효공이 죽자 거열형으로 처형된다. 10여년 전부터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대진제국’은 역사학자 손호휘의 소설 ‘대진제국’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제국 형성 과정을 그리고 있다.

통일신라도 마찬가지. 676년 신라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정복한 후 당나라군을 대동강 북쪽으로 축출한 후 한반도를 통합했다. 김유신은 신라에 귀순한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을 도와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을 보좌했다.

삼국통일 한국 드라마는 무수하게 나왔다. 변방의 소국 웨식스가 영국을, 약소국 진나라가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남단의 신라가 한반도 최초의 통일을 성립한 데는 앞서간 자들의 희생이 그 틀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긴 안목으로 역사를 보면 남과 북이 헤어진 것은 아직 100년이 되지 못했다. 전쟁을 치러야만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이미 골육상쟁의 6.25를 치렀고 충분한 휴전기간도 보냈지만 아직 종전 선언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 4월 27일은 남북 첫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3주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실패를 되풀이 하지 말자고 말했건만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교착국면에 빠져들었고 남북 관계 역시 경색됐다.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백신과 치료제 지원 등을 제의했지만 북한은 일체 호응하지 않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 가능성은 요원하며 우리는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 가까운 시대에 통일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역사서나 역사 드라마를 볼 때마다 역사적 대업을 이루기 전에 사력을 다하는 인간적 모습이 마음에 다가온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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