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절뚝발이 개

2021-04-30 (금) 김희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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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여 견주에게 여자가 어디서 개를 키우느냐고?

아프간에서 최초로 여성 체육관을 운영해온 사바 바라크자이라는 여성은 푸른 눈을 가진 애완견, 시베리안 허스키와 산책을 나갔다가 생면부지의 몇 남성들에게 애완견이 총살된 기사를 접한 나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아스만이라는 그녀의 반려견은 가족이나 다름없을 존재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낸 나에겐 충분히 이해되고 납득이 가는 사건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살 때 메일을 보내기 위해서 한 블럭 떨어진 남편의 사무실로 이동할 때면, 머리에 브루카를 두르고 집 앞에 보초를 서는 군인의 보호를 받으며 흙먼지 자욱한 길을 나설 때, 어느새 기다렸다는 듯이 어김없이 나타난 떠돌이개, 골든 리트리버가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달려와 내게 두다리를 뻗어 가슴까지 튀어 오르며 꼬리를 흔드는 격렬한 몸짓은 사랑받는 주인에게나 표현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메일을 보내고 사무실을 나오면 또 어느새 절뚝거리며 내게 달려와 동일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는데, 마음은 반가운데 열정적인 그 녀석의 세찬 애정 공세가 두렵기만 했다. 나를 바래다주는 군인이나 우리집 집사도 개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무슬림들의 문화이자 관습이었다.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그 떠돌이 개와의 일상이 반복되면서 자기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여러 나라에서 오랜 외국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로마에 가면 로마인이 되어야 한다는 경험 철학에 이상기류가 감지되었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집사인 하디에게 넌지시 화두를 땠다. 길거리의 유기견을 우리가 키우면 어떻겠냐고? 무슨 일이나 순종하던 하디지만 정색을 하며 노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지난 날 주인의 사랑을 흠씬 받았을 흔적이 뚜렷한 골든리트리버가 절뚝거리며 길거리를 배회하는 동안에도 나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현지에서 많은 시달림과 괴롭힘을 견디며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그 녀석은 그래도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온몸으로 반기는 모습이 가엾고 애처롭게만 느껴졌다.

긴 세월이 흘렀으나, 근자의 시베리안 허스키의 기사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격렬한 애정을 표현하며 달려들던 유기견을 회상하게 되었다. 로마인이란 이름으로 시류에 영합하여 절뚝발이 유기견을 품어주지 못한 잠재된 이기심은 회한을 남겼고, 삶의 향방에 과제와 화두를 던져주었다.

<김희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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