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여우와 인지부조화

2021-04-21 (수) 여주영 고문
크게 작게
이솝 우화에 ‘여우와 신포도’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한 여우가 나뭇가지에 잘 익은 포도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여우가 배가 고파지자 그 포도를 먹기 위해 여러 번 따기 위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결국 따지 못한다.

먹고 싶었는데 딸 수 없던 여우는 자신의 능력 부족은 인정하지 않고, “그 포도는 시고 맛없는 포도였을 거야” 하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한다.
이는 무슨 일을 쉽게 포기하거나 자신의 무능함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비꼬는 교훈이다.

이런 인지부조화 빈도가 요즈음 급격히 늘고 있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심리학에서 널리 회자되는 것으로 인간이 왜, 어떻게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훼스팅거(Festinger)가 1957년 발표한 이 이론은 인간의 태도와 행동이 일치함으로써 사회심리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람은 자신의 태도와 행동이 일차하지 않을 경우,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자기합리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상반되는 새로운 정보나 현실을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스트레스나 괴로움을 말한다. 그래서 인지부조화에 의한 자기합리화를 상징하는 ‘신포도’는 자신을 속여야만 고통에서 해방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해 준다.

인지부조화 현상의 극단적인 사례는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집단에 빠지는 것이다. 사실 훼스팅거가 인지부조화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종말론을 믿는 어느 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불편한 진실이나 잘못된 현실에 정정당당하게 직면하지 못하고 대체로 현실 도피를 위해 쉽고 간편한 길을 택한다.

어느새 온라인 소비자로 전락한 우리들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달라진 모습과 새로운 삶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에 따라 현재 아마존이 선두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이어 월마트와 같은 온라인 상점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디지털 기기, 스마트폰, 스마트TV, 테블릿PC 같은 것들... 끊임없이 우리를 손짓하는 이러한 디지털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갈수록 더 많은 편리함과 재미만을 추구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주위에 보면 삶의 재미만을 추구하면서 남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만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도처에 넘쳐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이기적으로 사는 사실은 부정하면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인생에서 오직 말초적 재미만을 꾀하는 여우같은 사람들이다.

요즘 신문은 매일 온통 이기적인 인간들의 폭력과 미움, 증오 같은 어두운 뉴스들로 도배가 되고 있다. 행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현실은 갈수록 삶을 옥죄는 속박의 굴레가 되고 있다.


우리의 전반기 인생이 그동안 ‘받는 삶’의 시기였다면, 후반기 인생은 타인에게 ‘주는 삶’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제는 더 여우가 되어 다 같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여우같은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말한다.

“모든 것을 스스로 깨우치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다른 이의 옳은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스스로 깨닫지도, 남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지도 못하는 사람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다.”

<여주영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