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아시안 라이브스 매터’

2021-04-16 (금)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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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Covid-19 팬데믹의 책임을 중국에 전가시키며 연일 ‘중국 때리기’를 계속한 이래 아시안들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만난 동양인에게 칭크(Chink-뙤놈), 구크(Gook-황인종) 등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퍼붓는 것은 예사이고 아시안 노인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상처를 입히거나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고 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뜻밖에도 흑인들이다. 같은 유색인종으로서 백인들의 유색인종 차별에 함께 연대해 나가야 할 흑인들이 오히려 백인들보다도 동양인 차별에 앞장서고 있는 듯하여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왜 흑인들은 같은 유색인종인 아시안들을 미워하고 있는 것일까. 흑인들 입장에서 보면 백인들은 과거 노예시절 주인으로 모시던 상전들로 아직도 두렵고 어려운 존재일 것이다.


반면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닌 동양인들은 웬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게다가 공부도 잘하고 비즈니스에서도 뛰어나니 아니꼽고 샘도 난다. 굴러들어온 돌 같은 동양인들에게 토박이인 흑인들이 밀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흑인들은 1862년 9월22일 링컨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과 행정명령으로 법률상으로는 자유인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1960년대 중반까지 노골적인 제도로, 또는 교묘한 방법으로 심한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미시시피, 앨라바마, 조지아 등 남부 여러 주에서는 이른바 짐크로우 법(Jim Crow Law)으로 흑인들의 참정권을 제한하였으며 공원, 극장, 학교, 대중교통시설 등 공공장소는 철저하게 백인들과 분리되거나 입장이 제한되었다.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여러 민권운동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조직적인 캠페인으로 1970년대 이후 크게 개선되었다. 그 결과 지난 2009년에는 제44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최초의 흑인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백인과의 소득격차라든가 교육의 불평등 등이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흑인들에 대한 경찰폭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때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M)’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BLM) 시위에는 흑인들 뿐 아니라 많은 백인들과 아시안들도 동참하고 있다.

만약 흑인들이 아시안 혐오범죄를 앞장서서 저지른다면 그 순간부터 ‘블랙 라이브스 매터(BLM)’ 운동은 명분과 동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타인종을 차별하는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흑인차별을 하지 말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현재 아시아계 미국인은 전체 미국 인구의 약 5%를 점하고 있으며 높은 교육열과 근면성으로 미국사회에서 모범적인 소수(Model Minority)로 인정받고 있다. 아시안 이민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중국, 인도, 한국계 이민자들은 이민 1세들의 땀과 희생을 바탕으로1.5세와 2세들의 상당수를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 전문직에 진출 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시안 아메리칸들이 미국에서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지 않고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지키려면 경제력이나 사회적인 신분상승 못지 않게 정치력의 신장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2세 3세들을 미국 사회의 지도자로 키워내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2017년 뉴욕타임스 최우수 도서로 선정된 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씨는 그 역시 이민 1.5세로서 우리 한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우리 한국인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은 영웅적이고 비극적이며 로맨틱하고 오랜 고통을 이겨낸 강력한 민족입니다. ’

그렇다. 우리 한인들은 오랜 고통을 이겨낸 강인한 민족 답게 다른 아시안 커뮤니티와 긴밀히 연대하면서 아시안 증오범죄의 광풍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는다. ‘웨 셸 오버컴(We shall overcome)!’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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