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마디- 중도의 길, 비겁한 길

2021-04-09 (금) 한범성/스태튼 아일랜드·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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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라는 초유의 전염 대유행으로 기진맥진 하던 지난해에 기름에 불붙이듯 경찰의 과잉 공권력 행사로 George Floyd 라는 흑인이 목이 눌려 숨진 사건이 있고난 후, 온 미국이 시위와 폭동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유와 동기도 없이 무작위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공격을 가하고 있는 사람들. “Black Live Matter” 라고 백인들을 향해 분노의 목청을 높이던 사람들이 Video Game하듯 체구 작고 연약하고 조용한 아시안에게 분풀이 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흑인의 인권, 목숨, 사회정의를 외치던 Sports Star, 유명 연예인, 정치인들의 그 호소력 있던 목소리는 왜 이럴 때 잠자코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인종차별이요 피해자라 여기는 한국인에게도 예외없이 백인이면 부러움 섞인 양키요, 흑인이면 모멸감 섞인 검둥이며, 동남아인들, 하다못해 조선족, 연변사람들에게 종 부리듯 인권이란, 사람다운이란, 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교만함이 있다. 내 가족과 내 인종과 한마디로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일 뿐인가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신앙에 확고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일에는 어정쩡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의 이 성경귀절은 현실의 사회적인 현상에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만 어느 하나 택하기를 강요 받을 때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뜨겁든지, 차든지, 좌든지, 우든지, 흑이든지, 백이든지, 모든 것을 나누려 하고 편을 갈라칠 적에 중간, 중도, 중용, 중산층이란 표현들은 어느 것 하나 번듯하지 못하고 맥을 못추는 불쌍하고 비겁한 무색무취의 단어일 뿐인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분열과 상처로 나라를 망가뜨릴 적에 중도층이 넓어야 나라가 살고 건강한 나라의 경제는 중견기업, 중산층이 많아야 한다고 한다. 목적 없는 듯, 의지가 없는 듯 보이는 중간치들은 항상, 행동하지 않는 양심으로 저평가 되어 비겁한 취급을 받는 서러움이 있다. 강한 리더십만 큰 인물이 아니라 상황을 관조하고 분별하며 온유와 겸손으로 양쪽을 다 포용하는 사람도 때로는 큰 인물일 수도 있다.

분열과 원수 대하듯, 적과 희생양을 만들어야 내가 잘 살수 있다는 절박한 세태에서, 어정쩡하고 비겁한 것 같지만 “악한자를 대적하지 말라.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평화의 왕으로 오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금 마음에 담아본다.

나대지 않고 온유함과 겸손함을 지닌 중간치로 어디에서나 쓸모 있는 중요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바램을 가져본다.

<한범성/스태튼 아일랜드·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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