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오늘이라는 보물

2021-04-06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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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어서부터 ‘오늘’을 가장 중요한 보물로 여기며 살아왔다. 어제는 이미 지난 과거이니 무효가 된 수표와 같고 내일은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이니 알 수 없는 시간이다.‘오늘’이 현찰이며 내가 가진 보물이고 나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며 나의 보물이다.

이스라엘의 명군 다윗은 어느 날 중요한 진리를 깨닫는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시편2:7)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내 생일이 몇년 몇월 며칠이 아니라 새로운 생일을 하나님이 설정하여 주셨는데 그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이다. 오늘을 나의 새 출발의 날로, 새롭게 시작하는 날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중생(重生)이다.

그런데 언어학자들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관례로서 임금이 즉위할 때 제사장이 왕의 머리에 손을 얹고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고 선언하였다는 것이다. 곧 이 말은 새 임금의 탄생을 선언하는 말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이란 말은 더욱 중요해진다. 오늘은 새로운 힘의 날인 것이다.

바울은 “내가 날마다 죽는다”(고린도전서 15;31)고 하였는데 그 말은 결국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말과 같다. 어느 날 헤롯 왕의 측근이 예수에게 알려왔다.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하니 곧 이곳을 떠나시오.” 예수는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일을 해야 합니다.(누가복음 13:33) 예수는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오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 곁에 진짜로 강도질을 하다가 처형되는 죄수가 역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예수님 당신이 당신이 나라에 가실 때 나를 기억하여 주셔요”하고 호소하였다. 예수는 그를 향하여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32)고 약속하셨다. 이 강도에게 ‘오늘’은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이 내 생일이다.”고 생각하라. 오늘이 나의 가장 좋은 날이며 즐거운 날이고 귀중한 날이다. 동시에 나는 “오늘은 나의 심판의 날이다”고도 생각한다. 사실 심판은 최후의 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심판되는 것이다. 잘잘못이, 행 불행이, 성공과 실패가 날마다 결정된다. 오늘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날이다.

뉴욕주 웨체스트에 살던 노인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유서에 “내 재산을 몽땅 사랑하는 개에게 물려준다”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개를 무척 사랑했겠지만 허망한 유서이다. 세상에 좋은 일이 쌓였는데 개에게 재산을 물려주다니 그 노인 정말 불쌍한 노인이다.

그런가 하면 나의 교인이었던 어느 노인은 날마다 거리를 다니며 빈 병을 주워 팔아서 헌금하였다. 그까짓 빈 병이 얼마 안되지만 그 노인은 “운동삼아 몇푼이라도 번 것을 좋은 일에 써달라”고 하셨다. 그 정신이 놀라와 나는 다른 구호금과 합하여 유용한 곳에 사용하였다.

오하이오 주에 하루살이가 번창하여 뉴욕타임스가 하루살이의 생태를 보고하였다. 하루살이는 입이 없는 동물이다. 하루만 살고 죽기 때문에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종족을 남기기 위하여 합궁을 한다. 합궁이란 말은 남녀의 성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나도 TV 사극에서 배운 점잖은 언어이다. 하루살이의 ‘오늘’은 후손을 남기는 중요한 오늘이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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