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여인의 조각-2020 5

2021-04-05 (월) 곽상희/올림포에트리, 계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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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나님 아직도 침묵하시나요
당신을 이대로 보낼 순 없어요
그 날의 당신을, 당신의 그 눈물방울을
나의 협곡 깊이 타고 흐르는
당신의 순정의 피강물 그냥 보낼 수 없어요
지금이라도 나의 검은 얼굴에
꽃이 피든지 절벽끝자락에
검고 헤진 역사 조각 조각 맞대어
긍휼의 열매 익혀 주시던지
더이상 침묵의 눈길을 보내지 마시고
잠잠하라 하지 마세요
내게는 수만수천만의 아이들 굶주려
쓰러지고 있어요
버려져 벌레보다 못한 귀한
당신의 영혼들, 그리고 우리가
살던 아름다운 강산은 이기와 불신
허기의 불이 타고 있어요
갈증이 더욱 부추겨 타는 얼음물줄기,
강산의 뿌리 떨고 있어요
오, 자비의 당신, 증오와 좌절의 칼날을
나의 얼굴에서 옮겨주시고
당신의 그 때 그 길에서 절망의 굴절도
펴주세요
엎드린 참한 영혼들의 부르짖음 다발 다발
당신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부활의 아름다운 꽃빛을 먹여주세요

<곽상희/올림포에트리, 계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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