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삶의 고통 속에서 의지할 곳은?

2021-03-25 (목) 원공 스님/한마음선원 뉴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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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이를 찾아내려고, 그러나 찾지 못 한 채 / 수많은 태어남의 윤회 속을 줄곧 서둘러 왔었네./ 태어남은 언제나 실로 괴로운 것. / 오 집 짓는 이여, 드디어 너를 찾아냈도다.
너는 다시는 집 짓지 못하리./너의 모든 서까래 부서지고 마룻대(상량) 또한 부러졌도다. /이제 내 마음은 형성되어진 것 아닌 것(열반)을 이루었네./온갖 갈애 다 끝내어 버렸네.”

35세에 위없는 진리를 깨달으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의 노래다. 모든 존재들이 피할 수 없는 고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 출가하신 부처님께서 마침내 고의 뿌리를 잘라버리고 승리의 게송을 읊으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주제는 고이다. “이것이 고다. 이것이 고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고의 소멸이다. 이것이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어떤 불자가 물었다. 불교는 왜? 삶의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 합니까? 밝은 면을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까?


우리의 삶에 무엇이 가장 큰 밝음인가? 우리나라의 성장한 모습을 보면 무척 기쁘다. 그것은 나의 자아의식에 기쁨을 준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돕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더 깊은 감동을 느낀다. 생명을 사랑하는 실천은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과 평화의 감동을 일으키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생명의 고통을 아파하는 연민과 사랑에는 자아의 탐욕이 없어서 어떤 기쁨보다 우리의 마음을 더 밝게 한다. 그리고 깊은 자비는 고에 대한 자각에서 온다.

우리 스님께서는 어린시절부터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삶을 사셨다. 어느 때 그것에 대해서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자기가 아파보지 않으면 남의 아픔에 깊게 공감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지금의 미얀마 국민들을 생각하니 “이것이 고다”는 가르침이 부처님께 얼마나 간절한 문제였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몸이 고의 뿌리다. 몸이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다. 평화적 시위를 하는 국민을 죽이는 미얀마 군부는 자기의 몸에 집착하는 자아의 욕망 때문에 국민들의 고통을 보지 못한다.

스탈린은 나라를 잃고 살기 위해 애쓰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던 우리 동포들 수천 명을 처형하고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준비도 없이 강제로 이동시켰다. 수 없는 사람들이 열차 안에서 죽어갔고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창밖에 던지고 가야 했으며 도착한 황무지 벌판에서 추운 겨울을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가족과 동족의 죽음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분들의 고통을 생각한다. 이것도 큰 뜻에서는 인류가 자비에 이르는 과정일지 모르지만, 그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고에서 벗어난 분들의 가르침만이 마침내 의지할 곳인 것 같다. 그 가르침은 몸에 의지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의지하라고 한다. 영원한 생명은 모든 존재가 평등하게 하나로 돌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리의 근원이며, 지혜와 자비의 삶으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몸의 감각과 자아의식에 깊게 빠져있다.

그래서 어떤 성자께서는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하며 탄식하셨다. 삶이 고라는 자각이 있는 사람은 고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아의식의 작은 나로서는 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끝 없는 자비로 우리를 감싸는 진리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원공 스님/한마음선원 뉴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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