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아시안 증오 멈춰라’

2021-03-2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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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권운동을 하기 훨씬 전인 세계 제2차 대전 이전에도 있었다. 미국내 흑인들을 주제로 한 ‘하이티(Haiti)’ 라는 사극이 그 당시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극은 아프리카계 흑인 역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들을 미개한 대상으로 표현해 오히려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다. 하이티는 후에 상연이 금지된 것으로 전해진다.

동양계 출신 언론인인 제프 양은 NPR 인터뷰에서 “Orient라는 단어는 인종차별적이고 문화적으로 부담스러운 짐(cultural baggage)이고, 동양인들을 싸잡아 비방하는 문구”라고 정의했다.


나아가 그레이스 맹 하원의원은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연방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미 연방법 조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혐오스러운 단어로 지칭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미국사회의 극심한 인종차별에도 억척스럽게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해 왔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반 동양인 폭력 사건들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뉴욕에서는 최근 약자들인 동양계 여성들과 노인들이 연달아 폭행을 당하고 있다. 맨하탄 지하철에서도 동양인들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며 폭행을 가하는 영상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뉴욕처럼 동양계가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는 한인들을 ‘중국 바이러스’라고 욕하면서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인을 비롯한 동양인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는 가하면,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코로나바이러스를 미국에 퍼뜨린 주범이라고 어이없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폭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계가 대낮에 거리에서 폭행을 당해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는 무서운 현실이다.

뉴욕총영사관은 아시안을 대상으로 혐오범죄가 증가함에 따라 각별히 주의하라는 경고까지 하고 있다. 한인 학생들도 코로나 왕따 폭력과 인종차별적 욕설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협박은 이제 흔한 일이 되고 있다.

뉴욕아시아계변호사협회가 펴낸 보고서에는 동양계를 겨냥한 혐오 범죄가 지난해보다 8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기야 애틀랜타 마사지 업소에서 4명의 한인여성 등 8명이 연쇄 총격에 희생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안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1964년 제정된 미국의 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종료, 성별 및 출신국가에 기반한 차별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속의 인종 폭력은 여전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더욱 반 아시안 감정을 불러 일으켰고,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 폭력, 차별 등이 곳곳에 만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떤 질병의 위협이나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들이 문화적 규범의 바깥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점을 하나의 원인으로 들었다.

이번 팬데믹 때는 그 대상이 아시아계였다는 것이다. 마치 아무런 죄 없이 흑인들에 의해 땀 흘려 일군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LA 4.29폭동 사건을 연상시키는 설명이다.

한인단체들은 ‘아시안을 향한 증오를 당장 멈춰라’는 구호를 내걸고 인종 증오 사건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종 증오의 터널 끝은 어디일까. 연달아 터지는 아시안 폭력 사건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아시안 증오 사건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정부당국의 강력한 대처를 촉구한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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