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쓰레기 전화

2021-03-16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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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주 펜로즈 병원의 전화 교환수 베시 조이스 양은 쓰레기 전화(Junk calls) 문제를 사회의 공해 문제로 제기할 생각을 하였다. 자기가 일하는 병원에 쓰레기 전화가 너무 많이 걸려와 일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험에 들어라, 집을 사라, 무슨 세일을 하니 얼른 사라는 등 각종 광고 선전이 너무 많아 신경을 건드리고 기분을 나쁘게 한다는 것이다.

전화 거는 사람이 선전원일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대부분 컴퓨터가 걸고 있으니까 욕을 해도 소용이 없다. 기분 나빠도 그저 당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실정이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내 이름을 대고 전화하는 쓰레기 전화도 많다.


쓰레기 전화 뿐이 아니다 요즘은 쓰레기 우편물(Junk mail)도 많다. 분명히 내 이름, 내 주소로 왔는데 내용은 쓰레기이다. 날마다 쓰레기 우편물이 댓장씩 들어오니 엄청난 양이다. 우편료도 상당히 들 건데 장사하는 사람들은 정말 열심이다.

광고하는 사람들은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겠지만 받는 사람은 받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여 서로 언론 투쟁이 생기는데 어쨌든 괴로운 세상이다. 근래는 팩스가 보급되면서 쓰레기 팩스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현대를 ‘쓰레기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하원 의원 루케마(Roukema)씨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권리가 테크놀로지(기술)에 의해 박탈되고 있다. 우리의 조용한 가정이 쓰레기 전화로 침략 당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날마다 누구와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교통)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화를 하고 문서를 보낸다고 다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우편물 그 전화가 반감을 일으킬 수도 다분히 있는 것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 효과를 발휘한다. 받는 상대가 불편하거나 기분이 나빠지거나 화를 낼 정도면 역효과이다.

시카고 대학의 심리학 교수 에커드 헤스 박사는 사람의 주의력에 대한 연구를 하였는데 인간은 자기가 바라고 편하고 즐거운 메시지만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장사하는 사람도 정치하는 사람도 설교하는 사람도 강요하는 메시지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워싱턴 중앙은행 벽에 새겨진 이런 글이 있다. “동정과 사랑의 메신저(전달자), 헤어진 친구들의 심부름꾼, 고독한 자의 상담자, 흩어진 가족들의 유대, 소식과 지식이 전달자, 거래와 산업의 도구, 평화와 선의의 전달자” 우편물의 역할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인데 쓰레기 우편물이나 쓰레기 전화와는 정반대의 효과이다. 많은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는 이유는 허위, 임시변통, 연막술 , 과장에 있다.

부부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상대의 기분 입장 등을 고려하지 않는 대화는 오히려 부부싸움의 동기가 된다. Communication 이란 영어는 본래 라틴어의 Communus에서 나왔는데 그 뜻은 짐을 함께 진다 혹은 공동책임이란 말이다.


효과적인 교통을 위해서는 방법보다 마음이 문제이다. 고통 하는 상대와 책임을 함께 지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한국어의 ‘동무’는 짐을 같이 지는 자를 가리킨다.

아내를 잠깐 속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국민을 임시적으로 연막 속에 넣는 것도 정치가로서는 쉬운 일이다. 고객을 사탕 발림으로 미혹하는 것도 쉽다. 그러나 그런 가정 그런 정치 그런 장사는 오래 가지 않는다.

로마 제국의 황제 시저가 그의 군대에게 자주 교시한 말이 있다. ‘검은 짧게 하고 영토는 넓게 하라”이다. 무력으로만 우격다짐으로 적을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남의 마음을 잡으려면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예수는 “내 멍에를 메어라.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셨다. 짐을 혼자 지려고 하지 말고 함께 져야 가볍다는 뜻이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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