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경락의 법률 칼럼- 반려견을 위한 법원의 배려

2021-01-27 (수)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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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미국 애완동물 제품협회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약 6,300만 가구에서 반려견을 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미국인이 개를 가족으로 생각하며 온갖 사랑과 정성을 쏟다 보니 비싼 사료와 애견용품뿐 아니라 심지어 거액을 마다 않고 호화 장례식까지 치러주기도 한다.

그러나 법적인 관점에서 엄밀히 따질 때 개는 단지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고의나 과실로 반려견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사망케 하는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법원에서는 개의 시장가치만큼의 손해액만 산정해줄 뿐 개의 신체적 고통이나 견주의 정신적 위자료 같은 것은 반영해주지 않는다.

이런 일반적 통념 가운데 최근 ‘록시’라는 반려견의 소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뉴욕의 한 해충방제 회사와 그 종업원 배리 마이릭(Barry Myrick)이 벌이는 소송에서 흥미로운 판결이 나와 소개하고자 한다.


마이릭은 5년 전, 이 회사에 취직할 때 회사로부터 해충 탐지견 핏불테리어 ‘록시’를 인계받아 낮에 함께 일하고 퇴근 후에도 집에 데려가 재우는 등 한 가족처럼 생활했다. 그러다 작년 초 코로나-19여파로 회사는 마이릭을 일시적으로 해고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업무차량과 법인카드, 회사의 유니폼 등만 반환 받았을 뿐 록시를 같이 돌려받지 않은 것이 분쟁의 불씨가 됐다.

해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릭에게 록시와 함께 복직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오히려 뉴욕을 떠나 필라델피아로 이사를 가면서 이를 거절했던 것이다.

마이릭은 거절 이유로 회사 측이 고용기간 중에는 록시 숙식비를 지급해오다 해고 후에는 이를 지급하지 않아 자비로 충당했으며, 무엇보다 입사 당시 록시가 회사소유임을 입증하는 법적 서류를 자신이 작성한 일조차 있어 회사 측이 분명히 록시의 소유권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고 시 이를 일체 언급하지 않은 것은 회사 측이 묵시적으로 록시의 소유권을 자신에게 양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회사는 마이릭을 절도죄로 경찰에 신고하는 한편 민사소송까지 제기하게 된 것이다.

통상적으로 물건에 대한 소유권 분쟁의 경우 법원은 누가 그 물건을 구입하고 관리했는지, 또 선물로 준 것은 아닌지 등 재산권의 비중이 누구에게 더 큰지 여부를 판단기준으로 삼게 된다. 하지만 지난달 결정된 록시 관련 민사상 가처분명령 판결에서는 재산권 관점이 아닌, 개의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best interest)’이라는 법리를 새롭게 적용해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

즉, ‘최선의 선택’은 흔히 이혼소송 시 자녀의 성별과 나이, 부모와의 친밀도, 부모의 건강 및 경제력, 부모와 자녀의 의사 등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해 아이에게 제일 유리하도록 양육권을 결정하는 법리인데 이것을 개 소유권 분쟁에 적용한 것이다.

재판부는 뉴욕주법상 개는 재물에 불과하다고 전제하면서도 견주의 사망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반려견을 돌볼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해 신탁을 설정할 수 있으며 가정법원의 보호명령에 애완견도 포함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처럼 개는 단순한 물건과 달라, 소유권은 회사에 있더라도 마이릭과 함께 있는 것이 록시에게 더 좋은 선택이기 때문에 민사소송의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실질적 주인인 마이릭과 함께 있으라고 배려한 것이다.

사실 반려견의 소유권 분쟁은 이혼소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소재이긴 했으나 이번 결정은 이혼이 아닌 재산권 소송에서 쟁점이 되었고, 이채롭게도 사람이 아닌 개에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법리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향후 이어질 본안 심리와 형사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될지 특히 반려가족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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