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차 3년결사 1년 삼보사 대만 스님

2020-05-20 (수) 03:14:19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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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3년결사 1년 삼보사 대만 스님
미주한인불교사에서 카멜 삼보사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1960년대 한국불교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고 이한상 거사가 도미후 1970년대 초 사재를 털어 창건한 사찰이자 주로 인적 많은 주택가에 절인 듯 아닌 듯 산재했던 다른 도량들과 달리 숲 짙고 물 맑은 곳에 들어선 도량이 삼보사다. 1980년대 말 의문의 화재로 재가 됐지만 셋방법당만 해도 감지덕지였던 시절에 번듯한 대웅전을 따로 갖췄던 절이 삼보사다. 이곳은 1990년대 청정수행의 본보기로 추앙받는 청화 큰스님(1923~2003)이 인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 주지는 대만 스님이다. 큰스님의 상좌인 그는 2011년 3월 초 주지 소임을 맡은 이래 10년째 삼보사를 지키고 있다. “큰스님 흉내라도 내고 싶어서... 좌탈입망의 희열을 증명하기를" 발원하며 그는 지난해 5월19일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과 함께 제2차 3년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스님을 인터뷰에 초대했다. 인터뷰는 전화와 텍스트메시지를 통해 이뤄졌다.

-2차 3년결사 첫 해를 넘긴 소회는 어떤가요.


△별일도 아닌데 소회라는 낱말자체가 부담스럽네요. 그냥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는 것을 조심하면서 지내지요.

-하루 참선 일정은 어떤가요.

△오전에 세 시간. 오후에 세 시간. 저녁에 세 시간이 기본이고 가끔 방문객이 찾아올 때는 유연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이는 요즘 얘기다. 스님은 초기 몇 달 동안에는 오전 한 차례 네 시간, 오후 두 차례 여덟 시간 해서 도합 열두 시간씩 가부좌를 틀었다. 시간을 다소 줄인 것은 건강에 무리가 가는데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에서다.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지구촌이 온통 아수라장인데 어렵고 말고가 있겠어요? 세파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더 절약하고 담백하게 지내야죠.

좀체 아쉬운 말을 입밖에 내지 않는 스님의 성정을 알면서도 생쌀 생식 얘기로 시작해 이리저리 에둘러 물었다. 결사 이전부터 법회날이나 음식 들고 찾아오는 손님있는 날 등을 빼고는 하루 한끼뿐인 공양마저 국이며 반찬이며 거의 없이 생쌀을 물에 불려 그냥 먹는 스님의 건강이 걱정된 탓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와 잇몸이 상해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코로나 때문이 이마저 막혀서 한국에 다녀와야 하나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별수없이 달포쯤 전부터 공양이 다소 ‘진화’됐다, 생식 대신 맨밥을 해 물에 말아 먹는 식으로. 원형참선방 주위에 데크를 치는 공사도 코로나 때문에 중단됐다. 법회를 중단한 3월부터는 전기요금을 아끼려고 참선방에서 법당으로, 법당에서 거실로 참선장소를 옮겼다. 단, 참선을 원하는 불자들이 찾아오면 법당에서 한다.)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점을 꼽으신다면.

△삼년결사를 통해서 공부가 조금씩 진전이 되는 즐거움이 있지요, 단박에 경계를 뛰어넘지 못해서 침울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도 법회를 줄인데다 코로나로 그나마 없어 사찰운영에 애로가 많을 것 같은데요.

△불자님들이 힘든 나날을 보내는데 삼보사 운영은 당연히 어렵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의 꾸준한 정성으로 큰 어려움 없이 지냅니다. 코로나가 잡히지 않아서 법회는 언제 정상으로 돌아갈지 막막하구요.

-올해 봉축행사를 갖지 않기로 하셨는데 섭섭해하는 신도들은 없는지, 그분들에게 해주실 말씀이나 코로나 이후 삼보사 운영에 대해서는.

△너무 막연한 대책이지만 부처님 공덕으로 잘 되겠지요.

대만 스님은 인터뷰식 문답을 즐기지 않는다. 한다 해도 툭툭 끊어치는 스타일이다. 정이 없다고 오해받기 쉽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스님을 돕는 이들이 꽤 있다. 특히 일본계 쿠미 보살-켈런 거사 부부는 혹은 둘이서 혹은 다른 도반들과 함께 찾아와 법담을 나누고 참선을 함께하곤 한다. 17일 저녁에도 그랬다(사진). 남가주에 사는 한 불자가 때마침 삼보사에 머물다 이날 법담 통역봉사를 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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