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모품이 된 의료진들

2020-04-15 (수) 여주영 고문
크게 작게
요즘 수퍼마켓이나 약국 등에 가면 밖에 놓인 쓰레기통에 고무장갑이 즐비하게 버려져 있고, 마스크도 이따금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다름 아닌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 차단을 위해 고객들이 끼고 물건 사고 나오면서 곧바로 내버린 것들이다. 카트나 물품을 만질 때 쓰고 버린 그야말로 1회용 소모품이다.

지난주 뉴욕주 '하루' 코로나19 사망자 숫자가 700명대로 폭증했다. 9.11 테러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숨진 것과 같다. 이탈리아에서 지난 달 장례도 못 치른 사망자들을 냉동 트럭에 보관했을 때는 마치 먼 나라 일 같았다. 하지만 이제 뉴욕, 뉴저지도 현실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으로는 시 공원이나 업스테이트 농장 냉동고에 사망자들을 임시 보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단순한 독감수준이 아닌 글로벌 팬데믹이 되어버린 코로나 사태. 이런 속에서 인간의 목숨이 일회용 마스크처럼 소모품 같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환자의 목숨이 쉽게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그들을 치료하는 의료진들조차 일회용 소모품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헌법에는 분명 인권이 명시돼 있다. 이런 인권 선진국에서 인명이 이처럼 쉽게 한번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처럼 여겨지게 된다는 건 아이러니다.

코로나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지금 일반 병원들은 물론, 뉴욕 컨벤션 센터 임시병원과 뉴욕으로 온 해군 병원선 컴포트 호에도 수많은 의료진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마저 코로나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미흡한 의료장비들로 인해 전 세계의 의료진들이 죽어나가고 있고, 이런 상황을 그들은 호소하고 있다.

우한폐렴의 발병지로 알려진 중국에서는 코로나19를 세상에 처음 알린 의사 리원량을 포함, 최소 13명이 숨졌다. 이탈리아에서는 최소 의료진 66명이 사망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이란 등에서도 사망자가 100명이 넘었다. 한국에서는 60대 의사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얼마 전 사망했다.

미국은 얼마전 뉴저지주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로 첫 의료진 사망자가 나왔다. 그가 숨지기 전 의료장비 부족으로 일주일간 한 개의 동일한 수술용 마스크를 썼다는 사실이 알려져 미국사회를 경악케 했다. 누구보다 마스크가 필수인 의료진에게 의료장비 부족이라니…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조차 수술용 안면 마스크나 장갑 등 보호장비가 부족한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지금 의료현장은 미국 병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같은 마스크를 며칠째 쓰고, 보호 고글이 없어 스키 고글을 쓰고 마스크를 소금물로 씻고 다시 착용하는 의료진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한다.

의료진들이 마스크나 장갑, 일회용 가운 등 충분한 개인 보호 장비를 갖췄다면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사망은 대부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동일한 마스크를 3, 4일 사용하는 것이 이제 기본이 되다시피 한 의료진들은 당국이 마스크 재사용을 지시한 사실을 공개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을 일회용 마스크처럼 취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죽해 브롱스의 몬테피오르 병원 간호사들이 의료 물자를 신속하게 지원해 달라며 호소문을 들고 항의 시위까지 벌였을까. 환자들을 돌봐야 할 그들이 거리로 나와 눈물을 흘리면서…다른 병원 간호사들도 병동이 아닌 길거리에 나와 호소에 동참했다.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 중에는 이제 갓 졸업한 젊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많다. 나이팅게일 정신으로 자신의 목숨보다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나선 자원봉사자들도 적지 않다. 왜 이들이 소모품 취급을 받아야 하나? 그들의 목숨도 환자의 목숨과 같이 소중하다.

<여주영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