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어쩌면 행복한 결말일 거야

2025-07-22 (화) 07:49:15 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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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도시 뉴욕에 살면서도 맨하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은 손꼽을 정도이다. 한국에서 절친한 친구가 미국을 방문했다던가 또는 내 아이들의 어린시절 꼭 보여주고 싶었던 뮤지컬 관람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딱히 찾아오는 친구도 없고 아이들도 그들 각자의 생활에 바쁘고 보니 그동안 멀리했던 고급스러운(?) 취미에 눈을 돌려본다. 뮤지컬 “Maybe Happy Ending” 이 최근에 관람한 공연이다. 내가 이 공연을 선택한 이유라면 디지털 시대(Digital Age)의 헬퍼봇의 사랑을 주제로 한 특이한 소재와 뮤지컬의 작사가이며 공동 극본자가 한국인 박천휴(Hue Park) 작가이다.

또한 한국 뮤지컬이 미국 브로드웨이에 첫 출품작으로 제78회 토니상 (Tony Awards) 부문에서 6개 (최우수 뮤지컬상, 각본상, 음악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무대디자인상)의 상을 받았으며 서울과 제주도가 극중 배경이다. 우수성이 인정되어서일까 공연장은 연일 매진이란다.


극중 주인공인 헬퍼봇 올리버는 이제 구형이 되어 버려져 옛 주인을 기다리며 오래된 아파트에서 낡아서 지직거리는 LP 재즈 음악을 들으며 화초를 돌보는 단조로운 일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살던 헬퍼봇 클레어가 충전기 고장으로 충전기를 빌리기 위해 올리버를 찾아오면서 그들의 외로운 일상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 처음에는 서먹했던 올리버와 클레어는 점차 서로에게 이끌리며 가까워 진다. 활발하고 직설적인 클레어는 자신의 종료일을 인지하고 있으나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이 밀며 아날로그 감성을 이룬다.

어느날 그들은 퇴역한 헬퍼봇의 금지된 외부 활동을 시작한다. 올리버가 꼭 보고싶어하던 제주도의 반딧불과 그리고 제주도로 떠난 전 주인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 여정에서 그들은 애틋한 사랑을 느끼며 서로에게 주어진 수명과 기억 소거 기능의 유한성을 알게된다.

클레어는 배터리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이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기억을 지우기로 마음을 먹는 한편 올리버는 클레어와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기로 결심한다. 유한성 이라는 숙명 앞에 그들은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며 아릿하고 감동적인 대화를 주고 받는다. “끝이 정해진 행복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우리의 끝은 정해져 있는데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결국 잊힐 사랑이라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을까?

“Why did we fall in love? When we knew it had to end .” 음악과 함께 차가운 금속 심장에서 뿜어 나오는 애절한 대화들이 오골거리며 관객들의 뜨거운 심장을 아릿하게 뒤 흔든다. 그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지만 그들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메모리 삭제’와 ‘종료’라는 피할 수 없는 이별의 그림자가 짙어진다. 무대 가득 어두울수록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반딧불의 빤짝꺼림이 그들의 사랑에 상징으로 느껴진다.

화려한 무대장치가 아니더라도 피아노와 현악기의 서정적인 재즈 선율이 그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더 붙잡게 한다. “사랑이란 게 원래 이렇게 아픈건가요?” 라고 묻는 클레어의 질문이 긴 여운을 남긴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며 그들의 마지막은 슬펐을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을까? 질문해 본다.

나 또한 유한한 삶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사랑하며 어떻게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걸까? 역시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네온의 광채가 빛 발하는 도시의 허공에 반딧불의 고운 빛을 그리며 극중 대화 한 구절을 떠 올려 본다. “반딧불은 말이야, 자기 빛을 내는 건데, 그게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기도 한대.” (클레어가 올리버에게 들려준 말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은 차가운 기계의 심장에서 가장 뜨거운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뿜어 올린 아날로그 시대의 어른들을 위한 아름다운 동화일 것이다

<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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