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291)제42대 William Jefferson Clinton 대통령(9)

2020-01-27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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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ton 은 2000년 11월에 월남전 종전이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월남을 방문하였다. 그는 대통령 퇴임후인 2009년 8월초에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만나서 “불법입국혐의”로 억류중인 두 미국 여기자들의 사면을 받아내어 그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 왔었다.

이 두 기자들은 중국으로 부터 불법입국했다는 혐의로 12년형을 언도받고 그해 3월부터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형무소 생활을 시작 하기 위해 수감되어있던 Euna Lee 와 Laura Ling 이었다. 이 두기자들은 국경근처의 중국에서 조선탈북인들의, 특히 탈북여성들이 신분 때문에 중국남자와 본의아닌 결혼을 하는등, 몹씨 어려운 처지에 있는 실상을 취재하고 있던중 북한으로 들어갔었는데 (북한측 주장) 북한의 국경경비원들이 그들을 즉시 “불법입국”이라는 죄목으로 체포하였었 다고 한다.

2009년에 Haiti 가 태풍으로 10억불로 추산되는 막심한 피해를 보자 U.N. 은 Clinton 을 U.N. Special Envoy 로 임명하여 Haiti 의 복구사업에 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 가 지원하도록 하는것을 주선하도록 하였었다.


또 국무장관을 하던 Hillary Clinton 은 한국을 방문하여 중남미 여러나라에서 봉제공장들을 하고있던 Sae-A 라는 한국의 거대한 의류생산 기업을 설득하여 Haiti 에 봉제공장을 세우도록 하였는데 Sae-A 는 Haiti 의 봉제사업과 의료기관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의 비판에 의하면 소수의 자본가들이 대다수의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엄청난 치부를 하는 “부도덕한” 자본주의의 나라이다. Karl Marx 에 주장에 의하면 착취를 당한 노동자들의 혁명으로 필연코 자본주의라는것은 붕괴될수 밖에 없는 파멸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제도인데 막상 공산주의혁명은 폭군치하에서 무척이나 가난하고 후진농업국이었던 제정러시아에서 일어났던 까닭에 Marx 와 Lenin 의 이론이 애초부터 빗나갔음을 증명해 주었었지만 아직도 세계 여러곳에서는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환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Marx 등이 공산혁명이 제일 먼저 일어날 곳이라고 생각했던 영국과 미국은 “노동착취”라는 원죄를 불가피하게 범하고는 있으면서도 자본주의 특유의 “효율성” 때문에 공산주의로는 상상도 못해볼 경제발전을 이루워 내었고 떡덩어리가 커지다보니 떨어지는 “떡고물”도 많아져서 “바닥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이론적으로는 주도권을 쥐고 있는 “공산주의 치하의 노동자, 농민들”보다 훨씬 더 자유스럽고 윤택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공산혁명”을 피할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순수자본주의”를 실행하지 않았던 까닭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는 오래전부터 해오던 “민주주의”의 바탕위에 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노조활동이 정착하였고 어설픈 사회주의 국가들보다 훨씬 더 좋은 “사회보장제도”가 수립되어 “모든 기성제도를 다 때려부시는 공산혁명”이 필요가 없었던 까닭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극소수의 거대 재벌들이 국부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부도덕스럽고 불공평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수많은 억만장자들이 “무자비한 방법으로 긁어모은” 재산의 상당부분을 공익, 자선사업으로 “사회에 환원” 하는 전통이 세워진 나라이기도 하다.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재벌들중에 공익재단을 세우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정도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공익사업에도 재산을 모을때 했던것과 같은 경쟁을 하는것 같은 인상도 준다. 그 극단적인 예로는 “가장 무자비한 수단으로 가장 많은 치부를 한 “철강왕” Andrew Carnegie 를 들수 있는데 그는 재산의 극소부분을 외동딸 Margaret Carnegie Miller 에게 유산으로 주고 전재산을 Carnegie Corporation,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Carnegie Mellon University (Carnegie Institute of Technology), Carnegie Hall 등등 수많은 공익사업으로 사회에 “환원” 하였다.

재산형성 과정에서 조금 덜 악착스러웠었더라면 더 좋았을 일이기는 하였지만 늦게나마 모은 재산을 환원한것은 기특한 일이다.

공익, 자선사업이 “유행”하다 싶어졌었으니 그에 따른 문제도 많았을 것임은 짐작할수있는 일이다. 모든 공익재단들이 겉보기처럼 순수한 동기에서 설립되고 합당하게 운영되고 있는것은 아니다.


설립동기에 “재벌로써 피하기 힘드는 사회적 규탄을 피하기 위하여,” “유산세, 상속세, 소득세등을 줄이기 위하여,” “어차피 세금으로 나갈 재산을 인심도 얻고 자기가 원하는 공익사업에 쓰기 위하여,” “변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보존하기 위하여,” “설립목적과는 다른 방법으로 유용하기 위하여,” “후세가 재단의 이사나 회장등으로 영구적인 고액의 년봉을 받아가게 하기 위하여” 등등 외관상의 공익재단이 사리를 위한 “합법적인”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러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의 공익, 자선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할 훌륭한 미국의 전통이다.

공익재단의 설립은 대게 재벌들이나 할수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예외가 없는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의 재산은 많지 않드라도 공익재단을 위한 모금을 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할수도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희극배우 Jerry Lewis 는 사망할때까지 수십년동안 매년 Labor Day 에 24시간 쉬지 않고 Telethon 이라고 불리웠던 TV 공연으로 수천만불을 모금하여 Muscular Dystrophy 라는 난치병의 연구가 계속되도록 하였었다. 그렇다면 Clinton 같은 사람도 한번 해볼만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과연 우리의 “똘똘이” Clinton 은 공익사업에도 엄창난 공헌을 하였다. 2016년의 대통령선거중에 Trump 가 조그마한 “공익재단”을 만들어 놓고 개인용도를 위해 유용하고 제일 큰 지출은 자신의 부동산투자 활동의 비리를 조사하게 되어있던 Florida 주의 Attorney General 의 선거자금으로 변칙 지출했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아주 “Trump 다운” 일이었다고 생각되었었다.

Clinton 이 대통령 재임시절이었던 1997년에 설립된 Clinton Foundation 은 그 자신도 상당한 액수를 기증하였지만 주로 Clinton 부부와 그들의 권유로 나선 유명인사들의 모금활동 협조로 모금하였었다. 대부분의 공익재단 들이 모금활동과 사무비로 30-35% 를 쓰고 있지만 Clinton Fund 는 재단사업목적으로 87% 를 지출 하고 모금과 사무비로는 13% 만 쓰는 모범적인 재단이라고 한다. 가족들은 이사등으로 봉사하고 있지만 재단으로 부터는 일체의 급여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Clinton Foundation 이 아랍국가들로 부터 거액의 기증을 받은것을 들먹이며 Trump 는 선거운동중에 Hillary Clinton 이 국무장관 자리를 이용해서 간접적인 뇌물을 받은 것이라고 비난했었었다.

Clinton 의 공익재단들은 Clinton Foundation 이 parent organization 처럼 중심에 있고 그 산하에 특정한 공익사업목적을 위한 여러 공익재단들이 있는것이 조금 특이하다.
큰 뭉치의 자금을 내놓고 시작하는 공익재단들은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지속적인 사업들을 할수 있지만 Clinton 의 공익재단들은 애초에 큰 뭉치의 자금이 없이 시작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때에 따라 Clinton 이 긴급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하였지만 미국정부나 국제기구들이 여러가지의 이유에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을 비교적 신속하게 그의 모금능력을 발휘하여 모금한후 빠른 시일내에 비교적 단기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내고 있다.
그의 공익재단 활동분야를 보면 그가 관심을 두었던 일들이 상당히 광범위하고 선구자적 인것을 알수 있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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