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날에 석양을 보다

2020-01-25 (토) 김자원/ 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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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에 아름다운 석양 사진을 보내온 지인께 그곳이 어딘가 하고 여쭈었다. 산책하는 집근처 '공원'이라며 당나라 시인 '이상은의 시' 를 보내왔다.

향만의부적(저녁쯤 마음이 울적하여)/ 구거등고원(수레를 몰아 고원에 올랐다)/석양무한호( 석양은 한없이 좋기만 한데) /지시근황혼(다만 황혼이 가까워지는 것이네.)

'한없이 좋은 석양' 이면 됩니다. 마지막 연은 버려도 돼요' 라고 보냈다. 잠시 후 '황혼의 가까움 그래서 석양은 아름다운' 이라는 답에. '석양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과 황혼의 가까움을 알아차린 삶은 잘 살으신 겁니다. 그리고 김준엽의 '내 인생에 황혼이 오면' 이라는 시를 보냈다.


‘봄에 피는 꽃보다 가을단풍이 더 아름답다.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보다 지는 석양의 웅장함이 아름답다’라며 인생의 끝부분을 가을이나 황혼으로 아름답게 표현한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생,노,병,사의 한계를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친다. 그리고 시시각각 느끼고 감지하며 배운다. 순 간 순간 깨어 있는 삶의 황홀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그래서 우리 삶의 과정이 어느 시기가 좋고, 어느 경계가 보람되며 어떤 상황이 최고라는 논리가 허망하다는 지혜를 터득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항상 깨어있는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인생의 어느 부분도 비록 힘들고 절망스런 순간마저도 나한테 주어진 최고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모든 체험이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장식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슬픔, 환희, 고독, 아픔, 그리고 배신까지도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는 것을. 우리의 체험은 버릴 수도 없으려니와 버릴 것도 없다. 사람들이 안이함에 머물러 있거나, 새로운 정서를 외면하고, 변화를 두려워 한다면 날마다의 삶이 무료하여 깨어있음의 신선함인 생명체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세상의 부귀영화를 쟁취하려는 시절을 지나 물질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차렸을 때의 가볍고 시원한 마음에 피어난 흐뭇한 미소. 어떻게 살아온 삶이든 스스로에게 가슴뿌듯한 충만감 깃들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다.

자신의 마음 깊이를 가늠하는 이는 오직 자신이다. 자신의 마음을 심층 있게 바라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시력에 맞는 안경을 써야 물체가 잘 보이듯, 각자 맞는 길을 찾아 정확한 깨어있음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

그동안 쌓인 갖가지 마음의 흔적들 그대로 비추는 거울에 비춰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이 깨어있음이다. 바라보므로 스스로 닦을 수 있는 기회도 있을 것이다. 내 생의 끝자락이 진정 아름다운 석양이기를.

<김자원/ 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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