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과골삼천

2020-01-24 (금)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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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 정약용은 평생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조선말의 암흑기를 밝힌 선각자의 선두에 선 사람이 다산이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천주교 박해시기에 사학(邪學)의 누명을 쓰고 1801년부터 20년 동안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지냈기 때문이다.

강진의 작은 방에 머물며 공부하는 동안 다산의 두 무릎 밑의 복사뼈가 세 번 구멍이 났다. 여기서 ‘과골삼천’(踝骨三穿)이란 말이 생겨났다. 다산의 ‘과골삼천’을 바라본 제자 중 황상이 있었다. 황상도 스승을 본받아 복사뼈가 구멍이 나는 고통을 참아내면서 학업을 연마했다. 하여 황상도 다산처럼 당대 유명한 석학으로 도약했다.“
-정민의 “삶을 바꾼 만남” 중에서

-마리오 인치사 로케타(Mario Incisa Rocchetta). 그는 이탈리아가 낳은 포도농사의 명장이다. 그는 20살에 포도원에 들어온 즉시 프랑스에서 가져온 포도묘목 연구에 매달렸다. 몇 년 연구한 결과 평지 옥토에서는 명품 포도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케타는 광활한 평지 포도원을 버리고 자갈과 화강암이 깔려있는 높고 좁은 산지로 갔다. 거기서 새 포도원을 개척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정신이 나갔다고 말했다. 그의 이름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40년이 지난 어느 날이다. 이탈리아의 한 산지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명품 포도주가 탄생했다. 그것이 ‘사시카이아’(Sassicaia)다. 그때가 1968년이다.

포도나무는 가혹한 시련을 통과하면서 자기강화를 이루며 성숙의 길을 간다. 옥토에 쉽게 뿌리 내린 포도나무는 생존력이 약하다. 타는 듯한 결핍의 목마름이 포도나무에겐 혁신의 기회다. 결핍이 많으면 포도나무 뿌리는 강한 헝그리 정신으로 자신을 단단히 조여 무장한다.

아브라함 링컨의 실패와 인내는 유명하다. 대통령이 되는 데 17번 실패했고 그 기간은 28년이었다. 하지만 링컨은 어떤 일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묵묵히 인내함으로 미래를 준비했다. 링컨은 늘 말했다. “나는 공부할 것이며, 준비할 것이다. 어떤 장애물도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기회는 찾아올 것이다.” 다산, 사시카이아, 링컨의 공통점은 ‘과골삼천’이다.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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