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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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좌 적명스님

2020-01-20 (월) 원공 스님/ 한마음선원 뉴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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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봉암사 태고선원의 수좌 적명스님께서 동안거 반결제 날 산행(山行)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행한 스님들에게 따라오지 말라 하고 다른 길로 내려오다가 실족 해서 입적하셨다고 한다.

2018년 봉암사 태고선원에서 하안거를 지낼 때 스님은 80세이시고 법랍이 60이셨다. 21세에 출가하여 60년을 선승으로 살아오신 것이다. 스님의 모습은 약간 구부정한 시골 할아버지 같았다.

하루는 80여명의 전체 대중이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는 운력을 하고 있었다. 말없이 풀을 뽑다가 허리를 펴는데 수좌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말없이 빙긋이 웃으셨다. 스님께서도 쭈그리고 앉아서 풀을 뽑고 계셨다.


스님께서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셨다. 건강하셨다.
스님은 평생 화두 참선을 하셨다. 화두는 뛰어난 방편이지만 어렵다고 한다. 스님도 출가 초기에 화두 참구가 되지 않아서 깊은 좌절감에 빠져서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지내는 토굴 옆 무덤가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깊은 무상감(모든 것은 변하여 항상 하지 않는다.)이 사무쳤다. 그때부터 화두 참구가 순일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스님의 말씀은 논리가 정연하고 진실성이 느껴져서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한번은 종단의 문제로 스님께서 어떤 결정을 했는데 법랍이 많은 몇 스님들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모두의 의견을 들으신 뒤에 스님께서는 조용하게 하나하나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셨다.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누구도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이해와 감동을 느꼈다.

해인사 총림 선원장을 하실 때에 홀로 지내시던 늙으신 어머니가 병이 들었다. 성철스님께서 아시고 한 암자를 비워서 어머니를 모시게 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사양하셨다. 대중에게 비난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선방의 최고 어른을 보통 ‘조실’이라 부른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나는 아직 그럴 위치에 있지 않다.” 하시며 ‘조실’ 다음의 ‘수좌’를 고집하셨다. 이렇게 덕행을 갖추시고 건강하셨던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을 생각하면 과거 생의 어떤 인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게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많은 인과의 법을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부처님의 큰 제자이며 신통제일인 목련존자는 먼 과거 생에 부인의 꾀임에 넘어가 늙으신 부모를 살해한 악업이 원인이 되어 외도들의 폭력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오늘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한 것들이 씨앗(원인)이 되어서 언젠가 미래에 나의 삶으로 열매(결과)를 맺는다. 이러한 인과의 법칙은 한편은 두려움으로 한편은 희망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기준이 되어준다.

오늘, 나는 ‘인과의 법칙’에 비추어 삶을 전체적으로 보며 살고 있는가?

<원공 스님/ 한마음선원 뉴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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