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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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내 것인가?

2020-01-17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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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한 집에 오래 살다보니 구석 구석에 쌓이는 상자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간다. 올 새해에는 큰 마음 먹고 이를 정리하려고 오래 묵은 상자부터 끌어내어 버릴것은 버리고 보관할 것은 따로 모아 정돈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연 것은 오래 묵은 편지와 세세 연년 모아둔 크리스마스 카드 상자였다.

상자속에서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는지 누렇게 빛바랜 ‘항공우편'들이 첫 상자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한국을 떠난 첫 해의 문안편지들이 지나간 오랜세월의 갈아앉은 마음의 평정을 뒤흔들어 놓았다. 대강 흩어보아도모아둔 편지를 버릴 수는 없었다. 모두가 다 살아있는 연륜의 숨쉬는 ‘시’들이었다.

​다음의 몇 상자들은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으로 가득찬 것들이었다. 형형 색색의 아름다운 카드에는 간단한 계절의 인사들이 마치 이웃에서 들리는 목소리처럼 사뿐히 내려앉아 있었다. 어렵지만 대부분의 카드들은 버리기로 하고 보내준 분들의 이름과 날짜 그리고 주소를 기록으로 남겼다.


많은 분들이 벌써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흔한 말로 성공한 분들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다니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재로 알려졌던 고등학교 동창생이며 사업으로 크게 성공해서 주위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던 친구, 관리의 길에 들어서 승승장구 마침내 최연소 장관을 지낸 친구, 학자의 길에서 크게 촉망을 받던 대학원 동기, 하나 하나 헤아리다가, 별 업적도 이룬 것도 없지만 오늘도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지금까지 지내온 것 主의 크신 은혜라…” 찬송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우리로 부터 멀지않다는 깨달음이 또한 화살처럼 가슴에 와 박히는 것을 느끼며 주어진 시간과 삶에 대해 감사함과 시간에 대한 조급함이 함께 밀려오는 느낌이, 버리려고 쌓아논 무수한 카드들 위에 맴도는 듯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이것은 다만 묵은 편지나카드에 해당되는 물음은 아닐 것 이다. 우리 삶 속에서 얻고 이루고 쌓아온 모든 것, 그 것이 정신적인 것이던 물질적인 것이던 중년을 지난 모든 사람들이 정직하게 대면하고 결정을 해야 할 과제인 것이 틀림없다. 커다란 집을 다시 사서 이사한 친구가 열심히 그 집을 다시 고치고 수리하는 것을 보고, 왜 그러는 지를 물었더니 다시 팔 때를 생각해서 그런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내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감상적인 생각이 들었다. 얼마 살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을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 보물인 듯 구석 구석에 쌓아놓은, 결국에는 버려야 할 것들을 내 재산이라 만족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떠날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주어진 삶 속에서 소유한 모든 것은 스쳐가는 것이요 우리는 잠시 그것들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가진 것을 나누고 너그럽게 베풀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즐겨 넘겨주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 깨끝하게, 간단하게 우리 삶을 정돈하고 가진 것을 자신의 재산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필요한 이웃들에게 더 베풀고 더 나누고 그리고 더 사랑하는 것이 새로운 이 한 해를 건강게 잘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이기를 기원한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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