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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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 입어야 하나요?

2020-01-13 (월)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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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한 겨울 날씨에 움츠러든 몸을 녹이기 위하여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미국 유수의 온천 관광지인 ‘사라토가 스프링스’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에 살면서 그동안 한번도 미국식 온천장에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온천욕을 하는지 궁금했다. 한국처럼 벌거벗고 탕에 들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몸을 가리고 들어가야 하는지 궁금하던 터에 미국인들은 수영복을 입고 탕에 들어갈 것이라는 지인의 말이 그럴 듯 하게 들려 가족 수대로 네 벌의 수영복을 챙겨 넣고 길을 떠났다.

북쪽으로 시원하게 뚫린 87번 고속도로를 세 시간 가량 달려 예약해 놓은 C 온천장에 도착했다. 카운터 직원에게 탕에 들어갈 때는 수영복을 입어야하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의아한듯 나를 쳐다보다가 싱긋이 웃으며 '잇츠 업투유 - 손님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나와 두 아들은 남탕으로 들어가고 아내는 여탕으로 들어갔다. 입욕시간은 45분으로 제한되어있으며 시간이 되면 노크하겠노라고 안내직원이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목욕하는 공중목욕탕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곳의 온천욕은 한사람씩 각 방을 사용하도록 되어있었다.

네 평 남짓한 좁은 방에는 벽쪽으로 욕조가 놓여있고 그 옆에는 침대가 있었다. 토일렛도, 샤워꼭지도 없고 비누나 샴푸도 없었으며 몇 장의 크고 작은 수건들만이 침대위에 개켜져 놓여있었다.

한국의 대중사우나에 익숙해있던 나는 초라하게까지 느껴지는 시설과 45분으로 제한된 입욕시간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대중 사우나는 얼마나 크고 시설이 좋은가. 10여 달러 안팎의 돈을 내면 입욕권과 함께 가운을 나눠준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욕탕에 몸을 담그고 나와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드나들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확 풀리는 것 같다.

참숯 사우나, 게르마늄 사우나, 자수정 사우나 등 그럴듯한 이름들이 붙어있는 찜질방들을 차례로 돌며 땀을 흘리고 난 후에는 샤워를 하고 음식과 음료수를 파는 바에 앉아서 느긋하게 시원한 식혜나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신문을 읽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싫증이 나면 대형 TV가 설치된 라운지로 간다. 이곳에서는 옛 어른들이 아시면 기절초풍할, 남녀 뒤섞여 누워있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춥고 습한 북구라파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우나는 이와같이 한국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뉴욕과 뉴저지에도 한국의 대형 사우나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한국식 사우나가 생겨 한인은 물론 타민족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동북부의 추운 겨울이 한결 따듯해진 느낌이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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