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2020-01-06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이름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는 철학자 신학자 대 설교자였고, 18세기 미국의 ‘대 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을 약관 30세에 주도했던 인물이고, 프린스턴 대학 총장도 지냈다. 20대의 젊은 시절 그는 새해를 위한 다섯 가지 결심을 하고 한 해 뿐이 아니라 평생의 좌우명으로 지켰다고 한다.
“첫째 목숨이 붙어있는 한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겠다. 둘째 남을 깎아내리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겠다. 셋째 어떤 말이나 행동도 감정풀이나 복수심으로는 절대 하지 않겠다. 넷째 걱정거리가 되거나 수치로 남을 일은 안 하겠다. 다섯째 나의 모든 시간은 창조적이며 건설적으로 쓰고 허송하지 않겠다.” 평범한 말 같지만 이 다섯 가지만 실천할 수 있다면 그대도 존경 받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새해 결심에 연루된 한 소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필라델피아에 존이란 아이가 살았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12세에 소년 가장이 된다. 학교를 계속할 수 없어 벽돌 공장에서 노동을 하였다. 어느 해 새 날이 밝았을 때 그는 이런 결심을 하였다. “교회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벽돌을 깔자. 월급 일부를 벽돌로 달라고 하자.” 비 오는 날이면 교회로 들어가는 길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말이나 마차를 타고 오는 교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존은 한 번에 벽돌 열 장씩을 깔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벽돌 깔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소년의 선행을 본 어른 들이 잘못을 깨닫고 얼른 교회 길을 포장하였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이다. 백화점이라 불리는 가게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미국 체신부 장관도 지냈고 미국 주일학교 전국연합회의 초대 회장이기도 하였다. 워너메이커의 일화 중 유명한 것은 모교회의 주일학교 교사 직책을 다하기 위하여 장관 시절 4년 동안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까지 매 주말 마차로 왕복하였다고 한다. 책임감이 철저한 사람이다.
새 출발이란 너무나 신나는 일이다. 새 해는 새 출발 할 수 있는 계절이기에 신나는 때이다. 잘못 그린 과거의 그림을 속상해 할 것은 없다. 새 도화지가 앞에 놓여있지 않은가! 지난 실수의 가책 속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새 해라는 기회가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싫어도 다시 한 번, 미워도 다시 한 번, 억울해도 다시 한 번, 아파도 다시 한 번, 새로운 걸음을 내딛어 보자.
알프스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13일간 방황하다가 구출된 일이 있었다. 그는 매일 12시간씩 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길을 잃은 장소를 중심으로 불과 6km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눈을 가리면 똑바로 걷지 못한다. 20m를 걸으면 약 4m 이내의 간격이 생기며 100m를 걷게 되면 결국 원을 그리면서 돌게 된다. 이 현상을 ‘윤형방황’(輪形彷徨) 이라고 한다. 눈을 가리고 가급적 똑바로 걷는 데는 두 가지의 비결이 있다. 하나는 자기가 생각한대로 과감한 보조로 성큼성큼 걷는 것이며, 또 다른 비결은 약 30보 걸어간 후 잠간 멈추었다가 새 출발의 기분으로 다시 30보를 걷는 것이라고 한다. 인생에도 ‘윤형방황’이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눈 가리고 걷기와 마찬가지다. 소신대로 과감하게 전진하고 가끔 새 출발의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과거의 닻을 끊지 않으면 새 출발이 불가능하다. 고민하던 골방과 한숨의 숲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 미움의 분화구와 질투의 늪에서 탈출하여야 한다. 경쟁의 전쟁터와 욕정의 수렁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래야 새 출발이 가능한 것이다. 온갖 끄나풀을 다 붙들고 있으면서 어떻게 배를 출범시킬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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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