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제직이 너무 좋아

2020-01-02 (목)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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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사제가 되려는지, 왜 사제로 살아갈려는지 맴도는 의문은 나에게 떨쳐버릴 수 없는 화두같았다. 신부로 살아가는 그 많은 시간동안 하느님이 나를 부르셨는지 아니면 내가 나의 똥고집으로 이 길을 걸어가는지의 질문이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맴돌았다. 신학교 때는 내노라하는 골통이었고 군대에서는 알아주는 고문관이었고 항상 나는 아무데도 어느 곳도 잘 맞지 않는 이방인이었다.

사제직이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하고 불편하고 내 직분에 자신없을 때도 많았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 신부직을 그럴듯하게 할 줄은 알게 됬다. 발령받은 본당이 이미 3개가 되었고 나름대로 큰 사고 없이 잘 사목을 해왔다. 처음에는 벌벌 떨고 못하는 영어로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사목이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이제 제법 사목자이니 사제이니 폼이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죽을 것처럼 힘들던 많은 일들이 이제는 몸에 착 붙어 잘 재단된 옷처럼 편해졌다.

한때는 본당 신부직이 무겁고 힘들어 다 던져 버리고 훨훨 날아가 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바램과 변덕들을 맞추기 위해 아슬 아슬 외줄을 타는듯한 내가 너무 싫어 다 집어던지고 떠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난 이미 신학교때부터 빨리 은퇴해서 낚시나 하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가 학장신부님에게 신부도 안된 놈이 벌써 은퇴 생각, 낚시 생각 하냐고 핀잔받았다. 난 처음부터 아주 기본자세가 안된 신학생이었다.


지금도 솔직히 은퇴가 얼마 남았지 손가락으로 세면서 중간에 포기를 할 수는 없어 내 임무를 완수하는 그날, 사도 바울로처럼 달릴 길을 내가 다 달렸을 때 그래도 힘이 남아있다면 훨훨 날아가는 새처럼 자유롭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 성당에 은퇴하신 인도신부 스탠리 신부님이 계시다. 얼마 전에 50주년을 하시고도 시간이 많이 갔으니 지금 80이 많이 넘었다. 그런데 이 분은 모든 미사에 나오셔서 성체분배 도와주시고 성당을 하루종일 맴도신다. 그리고는 80넘은 자신을 성당에 남게 해줘서 고맙다고 항상 나에게 말씀하신다.

평생 신부로 살았는데 성당보다 더 좋은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나에게도 불길한 오멘으로 다가온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사제직이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힘들고 거북하고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자신 없었는데 어느새 내가 사제직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사제직처럼 감사하고 은혜로운 직분도 없다. 지금 보니 사제직과 무엇을 어떻게 바꾸냐? 사제직이 그 무엇보다 훨씬 더 값지고 감사하다.

사제직은 정말 큰 선물이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다. 하느님 사제로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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