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공동체를 허무는 두 가지 위험’

2025-11-12 (수) 07:57:43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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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내부의 두 가지 위험이 있는데 그것은 ‘친구’와 ‘적’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닮은 이들과는 쉽게 어울려 친구가 된다. 하지만 친구 관계가 건강하지 못할 때 공동체는 쉽게 병든다.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오.” “당신도 그래요.” “그러니까 우린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오. 영리하고 총명하거든요. 우리끼리 똘똘뭉쳐 공동체를 지배합시다.” 잘못된 친구 관계는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한편 ‘적’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두려움은 인간관계를 퇴행시키고 서로 반감을 갖게 만든다.

공동체 안에 두려움의 감정을 일으키는 적대적 인물이 존재할 때 그 공동체는 더 이상 건강하지 못하다. 무조건적 공감을 요구하는 친구 관계나 두려움을 이용하여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기는 분파주의는 둘 다 공동체를 허무는 위험요인이다. (프리초프 카프라의 ‘the Web of Life' 중에서)


얼마 전 카타르에서 개최 된 아시안 컵 축구경기의 4강전에서 보여준 한국 선수의 무력한 경기는 민망스러웠다. 준결승전 경기가 있기 바로 전 날, 선수들끼리 심하게 싸웠다. 중요한 4강 경기를 앞두고 서로 한 마음이 되지못했다.

공동체는 ‘나를 위한 공동체’에서 ‘우리를 위한 공동체’로 전환될 때 만 비로소 최상의 공동체로 빛을 발한다. 한국 대표 축구 공동체는 그렇지 못했다. 천문학적 수입을 자랑하는 세계적 스타 선수 몇 명은 공동체 정신을 망각하고 개인의 명예 유지에 더 관심을 가졌다. 개인우월주의는 파벌보다 더 위험하다.

건물을 지을 때 접착체 역할을 하는 자재는 시멘트다. 시멘트는 부드러운 석회와 모래를 섞어 만든다.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 사이를 단단하게 묶고 접합시키는 인간 시멘트는 온유한 마음을 지닌 모범 구성원이지 특별하게 튀어오르는 용수철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 중 가장 규모가 컸고 유명했다. 다양한 순회전도자, 지식인, 웅변가, 수사학자, 부자가 고린도교회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그야말로 스타플레이어였다.

번창하는 무역도시 고린도의 세속성은 스타플레이어에게 감염되어 고린도교회를 흔들어 놓았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안의 스타플레이어에게 충고했다. “몸의 지체 중에 더 약하게 보이는 것일수록 오히려 훨씬 더 요긴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의 몸을 세우면서 온유하고 부드러운 이들에게 더 중요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공동체 안에 분열이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세속화와 분열은 심각했다. 이때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으로 회귀해야함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왜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만을 자랑하겠다는 강열한 메시지를 선포했을까. 바울이 단호하게 약자들의 편에 서려고 결단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교회는 하나로 통합된다. 교회는 살아 움직인다.

고린도교회처럼 한국교회의 적도 내부에 있다. 교회여 갈보리 십자가로 돌아가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당신은 리더인가. 교회 내부에서 파벌을 만들지 말라. 내편 아닌 주님 편을 만들라. 십자가는 이 길을 안내한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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